시골에서의 유학생활이라 서울에서의 삶은 학교 기숙사와 친지의 집으로 이어졌고
가끔은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은 맛있는 반찬이며 속옷 등을 챙겨 서울에 올라오곤 했었다.
자가용도 흔하지 않던 시절에 부모님은 그 먼거리를 버스를 타고 상경하셨는데 울진에서 강릉까지는 직행버스,
강릉에서 서울까지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오셨다.
부모님의 상경소식에 나는 다른 일정을 뒤로 하고 터미널에 마중을 나가곤 했었는데
터미널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에서 내리는 부모님 모습이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풍경 보다 정겹고 예쁜 풍경인듯 했다.
그때 부모님과 자식간의 아름다운 풍경 탓인지 모르지만
요즘도 버스 터미널에서 부모와 자식관계로 보이는 모습을 보면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에 얽힌 내막을 짐작해 본다.
자식의 군입대가 안타까워 아들의 손을 잡고 건강함과 무사함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모습.
명절때 쌀자루에 쌀을 담아 방앗간에 떡하러 가는 할머니.
시골장터에 아침나절 낡은 유머차 끌고 식구들의 반찬거리를 사기위해 시장길 나서는 할머니.
친구끼리 식당에 가서 서로 밥값 내려고 싸움까지 하는 어느 중년 남성.
초등학교 교문 앞, 길을 가다 넘어진 어린이을 일으켜 세워주는 이웃집 아저씨.
이런 풍경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물건을 사기위해 옷가게 들렸다 지갑을 두고 가게를 나온뒤 두고온 지갑을 들고 부랴부랴 " 아저씨, 아저씨" 라 부르며
지갑을 찾아주는 옷가게 주인의 모습도 그렇고.
울진군 북면의 장터에 들렸다가 고추를 자전거에 매달고 가는 어느 아저씨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광경을 보는 내가 왜 이렇게 행복할까?
어느날 시내를 가로 지르는 도로에 신형으로 보이는 외제차를 운전하는 여성 한 분을 보았다.
요즘은 수입차가 많아 그렇게 신기한 모습은 아니지만 아무 일 아닌듯 역주차를 하고 내린 후, 애완견까지 껴앉고 어디론가
휑하니 걸어간다.
근데 이상한 일은 그 일과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가 없이 먼발치에서 쳐다보는 내가 왜 그렇게 부끄러운지.....
나의 주변에 나와 별 상관이 없는 풍경에도
내가 행복해하고 내가 부끄러워 하는 일들이 정말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