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룡용의 알 이다.
살다가 이렇게 초롱한 상태로 내 눈에 띈적 처음이다.
속살까지 맑은 1급수의 물에 알을 낳은 모양이다. 투명한 순대처럼 생긴 대롱 속에 고추씨 같은 눈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에는 현재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12곳이 있다. 3개의 코스로 운영이 되고 있다. |
- 산행일자: 2015년 4월 4일(토), 오전 9시 30분~
울진에 살면서 서면(삼근)에서 왕피리 동네로 통하는 옛길이 있다는 것은 얼마전에 처음 알았다.
왕피천 탐방로 개척로 관계로 얼마전에 담당자와 함께 한 번 걸어보고 이 번에는 혼자서 걸어보기로 하고
아래로는 서면의 시내가 보인다. 태백산맥의 줄기 속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서면이라는 동네다.
박달재 능선에서 천축산까지는 꽤나 멀다. 가는 도중에 불영사로 내려가 본다.
중간에 계곡의 다리, 돌다리를 번갈아 건너 농가 몇 채 있는 마을을 지나 서면에 도착했다. |
▲옛날 서면의 주민들이 왕피리로 다녔던 옛길로 부터 시작해 봤다.
얼마전에 한 번 다녀왔으며 이 번에는 혼자서 이것저것 둘러보려고 다시 걸어봤다.
박달재 부근까지는 오르막의 연속이였으며 박달재 능선길은 완만한 길로서 걸으면서 명상하기에 좋은 길 이였다.
불영사에서 계곡과 36번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은 내 생애 처음이다. 맨날 차로만 다니다 걸어보니 색다른 맛이 풍긴다.
마을의 속속들이도 눈에 담아보았다.
▲1. 울진의 대흥리를 지나 도로변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했다.
2. 36번도변의 팔각정 휴게소 부근의 노전 가게. 감자떡과 오뎅은 가끔 오며, 가며 늘 나의 간식거리이다.
▲1. 서면 시내의 에코사업단 사무실에서 박달재 방면으로 조금 들어가다 오른쪽으로 진입한다.
3. 걷는 왼쪽으로는 맑은 물이 흐른다.
2. 봄이 왔다. 농부들의 논과 밭에 생명수가 될 농수로이다.
▲1. 친환경 의자이다.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퇴색이 되는가 보다. 좀 더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 주민들의 사는 몇 채의 주택이 나온다.
3. 멀리 박달재 올라가는 도로변에 주택도 보인다. 전망이 좋을 것 같다.
4. 조그만 개울도 건너본다. 무슨 고기가 살까 하고 보지만 고기들은 보이지 않는다.
▲1. 박달재 부근에 만들어진 나무 계단이다.
2. 옛길을 오르던 중에 서면 시내를 한 번 내려다 본다.
3. 박달재 옛길의 분기점이다. 중간에 보이는 조그만 길로 올라간다.
▲1. 역시 울진금강송의 자태는 싱싱하다.
2. 등산을 다니다 보면 위험방지용의 밧줄이 늘 말썽인 것으로 많아 봐 왔다. 새로보는 공법이다.
밧줄이 늘 느슨해 산행자들이 많이 위험했었는데 밧줄이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을 하도록 해두었다. 아래서 나사로 고정을 하도록 해두었다.(붉은 색 동그라미)
▲1. 산행로 중간에 오소리란 놈 같다. 구덩이를 파두었다.
2. 상쾌한 기분이 나는 구간이다. 그런데 오르막 구간이라서 좀 그렇다.
▲1. 무슨 버섯 같은데 검은 색이 나는 버섯같다. 산 에서는 가급적 버섯류는 건들지 않는 것이 좋다.
2. 나무에 빨강색 딱지를 붙여두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3. 능선길에 서면 시내가 훤히 보인다. 잠시 서서 옛날 사람들의 주거지 조건들을 생각해 본다.
4. 배가 고프니 할 수 없다. 부지런히 올라와서 잠시 간식을 먹고 가기로 한다.
고구마는 전번 울진장날에 명도리산 고구마 5,000원 어치를 샀다. 아는 이웃집 아줌마가 거의 곱배기로 얹어준다.
크기가 작아서 맛이 꿀맛 같고 분이 많아서 굿~!
▲1. 산길에 자주 묘에 잔디가 전혀 없는 것을 많이 본다. 혼자서 원인들을 분석해 본다.
잔디의 생육요건이 맞지 않아서 그렇겠지. 묘지 앞에 왠 황금소나무 비슷한 것이 있어 아래로 내려가 보니...
2. 묘지 임자가 왠 소나무가 보기가 싫었던지 손을 봐 둔 흔적이 보인다.
3. 여기 구간은 아직도 깊은 가을이다.
4. 걸어온 길을 소나무 숲 사이로 뒤돌아 본다.
▲이 구간이 천축산과 하원방면, 그리고 불영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 구역은 불영사 스님들과 주변 주민들이 먹는 식수의 식수원이다. 출입금지 구역이다. 다행히 관계기관의 허락을 '필'해서 ...조심조심 내려가 본다.
▲북바위봉 인가? 나무가지 숲으로 위엄을 뽐낸다.
▲ 2015년 봄,
울진지역의 산에서 피는 진달래의 아름다움의 진가를 처음 알았다.
주변이 아직 봄철의 녹색향연이 펼쳐지지 않아서 일까? 매년 진달래를 봐 왔지만 올해의 진달래는 유달리 그 색깔이 곱고 짙다.
이 철에 진달래 주변의 나무들이 아직 봄색깔을 내지 않아서 일까?
암튼 깊은 산 속의 진달래는 정말 아름답다.
▲계곡의 도룡용의 알이다.
도룡용의 알은 돌아다니며 몇 번 봤었는데 이렇게 깨끗한 물에 깔끔하게 눈에 띈적은 없다.
현대에 와서 발견된 1억 5천만전의 도룡용의 화석의 모양과 최근의 모양이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화석'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모든 종(種) 들은 자연환경에 맞게 진화해 왔다. 자연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그들도 살아야 하는 절박함 속에 역사는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억년 이라는 긴 세월동안 어떻게 도룡용은 왜 진화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 인간사회에서 말하는 '지분지족'의 동물일까?
그 삶에, 변화하는 자연에 그냥 맞춰 욕심없이 그냥 그렇게 내 분수에 맞춰 살아서 일까?
▲1. 도룡용이 알을깐 1급수의 물이다. 물을 드려다 보니 영롱한 자체 그 대로 였다. 도룡용은 물이 조금만 혼탁하면 살지 않는다고 한다.
2. 작년 가을에 무슨 벌레가 나무에 누에고치 처럼 집을 짓고 알을 까서 나방되어 날아간 흔적이다.
▲1. 내려오니 불영사의 한 쪽이 보인다.
2.3. 옛날부터 여기는 이렇게 넓은 지역으로 되어 있었다. 이름모를 나무들이 하늘로 높게 솟아오르고..
4. 불영사의 부도 주변에 얼마전에 '명상의 길'이 만들어져 있다. 부도 주변의 '명상의 길'의 길이는 길지 않다.
▲1. 불영사 주지스님을 지낸 조선시대의 양성당 혜능선사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
사실 이 분도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부도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고 돌아가는 것 같다. 내용을 읽어보면 재미있는 사실도 있다.
앉아서 입적한 혜능선사와 부도의 특징 등을 설명해 두었다.
2. 부도의 주변
3. 부도와 탑
4. 주변에 '명상의 길'을 만들고 조림을 새로 해두었다.
# 부도 안내문( 부도 앞에 있는 안내문 그대로를 옮겨 적어본다.)
불영사 부도는 조선시대 불영사의 주지를 지낸 양성당(養性堂) 혜능 선사(惠能禪師: 1621~1696)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다.
양성당 선사의 법명은 혜능이고 세속의 성은 남씨로 1696년 (조선 숙종 22년 )12월 17일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이때 나온 사리로 그 해 이 부도를 건립하였다.
부도의 모양은 지대석, 기단석과 탑신 및 상륜부로 구성된 석종형이다.
기단석의 옆면에는 8판의 중복련을 양각으로 장식하였다.
신석은 하부에 6판의 양련을 상부에 14판의 복련을 장식하였다.
상륜부는 연쪽봉우리 모양의 보주를 조각하였다.
부도는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치석이 잘 되었으며, 장식문양 등에서 정교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부도비에는 혜능선사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1738년(조선 영조 14년)에 실치하였다.
비문은 영의정을 지낸 최석정이 친한 것으로 '명곡집'에 실려 있다.
▲부도비: 1738년(조선 영조 14년)에 실치하였다. 2015년 기준으로 277년 전 이야기다.
▲ 부도비에 뭐가 씌어 있는지 한 번 읽어보려고 드려다 보았다. 에고~ 내가 해석하기에는 좀 무리다.
양음각의 분간이 좀 어렵다. 세월이 오래되어서 일까? 가만보니 오래된 비석을 보수를 했는 것 같다.
원형은 그대로 두고 비석을 깨끗하게 이끼를 벗겨내고 보수를 한 흔적이 보인다.
여기에 혜능선사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1738년(조선 영조 14년)에 실치하였다.
비문은 영의정을 지낸 최석정이 친한 것으로 '명곡집'에 실려 있다.
비문에 대한 해설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부도비'에 관한 자료 (아래의 자료는 ' 울진디지털 문화대전'에서 발췌한 글 입니다.)
[금석문]
부도비의 비신 앞면, 뒷면에 명문이 음각되었으며, 글씨는 해서체이다.
글자의 크기는 앞면의 경우 2.5×2.5㎝로 거의 모두가 비슷하나, 뒷면의 경우에는 3.5×3.5㎝의 크기도 있다. 금석문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양성당대사의 법명(法諱)은 혜능이고, 자는 중열(仲悅)이며 세속의 성은 남씨로,
그 선대가 고려 때부터 선사(仙槎)에 우거하여 후예들이 이를 관향으로 삼았다.
대사로부터 고조, 증조, 조 등 5대를 연이어 과거에
급제한 명문 집안이며, 모친은 행주전씨로 명망 가문이다.
모친이 꿈에 하늘의 신선을 보고 대사를 잉태했는데, 태어난 뒤에 이름을 몽선(夢仙)이라 한 것은 대개 이 때문이다.
대사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곧아 말을 함부로 아니하였고 형제간에 화목하게 처신하며 항상 출세의 뜻을 가지고 있어
부모가 기이하게 여겼다.
열두 살에 응철장로(應哲長老)를 쫓아 출가하여 계를 받고 8년간 정진하여 모든 불경을 통달한 뒤 천조대사에 나아가 묻고
또 호구당에게서 수행하여 크게 깨달아 막히는 데가 없었다.
성품은 침착 인후하고 보시하기를 기꺼이 하였으며, 계율을 엄히 지켰고 평생을 명산 고찰을 찾아 주류하기 좋아하여 두류산, 금강산, 오대산, 치악산, 태백산, 소백산 등 그의 발자취가 두루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는 스승을 찾아 도를 강론하여 초연한 넓고 큰 뜻을 가지고자 함이리라.
어느 날 홀연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탄식하기를 ‘도를 구하는 데는 다른 방도가 없으니 사람이 근본을 돌이키지 않는 것은 어찌
일찍 떠난 고향에 돌아감을 잊는 것과 다를 바 리오.’ 하며
마침내 불영사로 돌아와 머물며 수도하는 집에 현판을 달아 양성당(養性堂)이라 했다.
또 그곳에서 시를 읊었는데, 모두다 염불삼매 중에서 자연히 흘러나온 것 같았으니 그 한 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론을 마치고 염불에 날이 저물면
밝은 달 솔바람 타고 사립문을 닫아 거네.
고요하게 살면서 고요하게 흥취를 자득하니
온 경내 고요하여 꿈결인 듯 아늑하네.
이 시를 읽으면 마치 내가 부처와 연꽃 사이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병자 12월 17일에 앉은 채 입적하니 세속의 나이는 75세요, 법랍 64세이다.
다비하는 날 서기(瑞氣) 한 줄기 중천에 뻗쳐 수일 만에야 사라지고 드디어 금빛 나는 사리 3과가 나왔기에 부도를 절 동쪽 수십 보
지점에 세우고 그의 수제자 천옥(天玉)대사가 장차 비석을 세워 양성대사의 행적(行蹟)을 기록코자 홍우해(洪于海)를 통하여
나[최석정]에게 비문을 청하니
우해와 대사는 마치 주나라 문왕과 태전(太顚)과 같은 관계이므로 대사에 대한 사실 모두 기억하고 있어
나에게 상세히 말하므로 내가 듣고 가상하여 비문을 쓰고 명(銘)하노라.
부처님의 오묘한 뜻은 성(性)을 바로 보는 것이 가장 요점인데
대사는 능히 일찍 깨우쳐 깊은 이치 꿰뚫어 보고
참 가르침 더욱 터득하여 삼승(三乘)의 도를 극명히 밝히셨네.
아! 우리 대사여, 후세에 족히 징표가 되리.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최석정 지음
------------------------------------------------> 아래는 원문이다.
"養性堂禪師惠能浮屠碑銘 養性堂大師法諱惠能, 字仲悅, 俗姓南, 其先自麗代寓居仙槎, 後裔仍籍焉. 自師高曾祖, 連五代登虎榜, 母田氏籍幸州, 亦望族也. 母夢天仙而娠, 及誕名夢仙, 盖以此也. 師幼而質直, 不妄言語, 與昆季處, 嬉戲同樂, 而常有出世之意, 父母異之, 年十二, 遂從應哲長老, 受戒八閱歲, 淹通內外典, 就天照大師而質之, 又禮叅於虎丘堂, 證悟無礙, 性仁厚沉毅, 喜檀施嚴戒律, 平生喜遊名山, 憩頭流入金剛, 若五臺雉岳大小太白, 足跡殆遍焉. 盖欲尋師講道, 而超然有汗漫寥廓之意矣. 一日忽見征鴈而歎曰, 求道無方, 人不反本, 何異於弱喪忘歸, 遂歸故棲, 住天竺, 頤養精神, 顔其堂曰養性, 其所爲歌詩, 皆從念佛三昧中流出, 一絶云,
講罷蓮經日已昏, 松風蘿月掩紫門,
幽居自得幽居趣, 一境淸閒夢不煩.
讀之, 怳然坐我於曼陀優鉢羅間也. 丙子十二月十七日, 跂坐寂然而化, 壽七十五, 臘六十四, 茶毗之日, 瑞氣罩空, 數日乃滅, 遂得金光舍利三粒, 建浮屠于寺東數十步許, 其首弟天玉將立石紀其蹟, 因洪于海萬宗, 求銘於余, 于海之於大師, 若文公之於太顚, 備諳事實, 爲余言甚詳, 余聞而嘉之, 遂爲之銘曰,
釋有妙旨, 觀性最要,
師能蚤悟, 覰破幽眇,
剩得眞詮, 克闡三乘,
於我大師, 在後足徵.
大匡輔國 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 崔錫鼎撰”.-->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최석정 지음
▲부도탑 주변에 가족들이 나들이 온 모양이다. 평화스럽다.
▲1. 불영사 입구의 일주문 부근에 목련이 피고 있고 피었다.
2. 불영사 입구의 흙길/ 이 길은 정말 오랫동안 흙길로서 많이 걸어본 길이다.
▲불영사 일주문 부근의 개나리와 목련
▲1. 일주문의 현판의 한문을 쳐다보았다. 균형잡힌 글자와 그렇게 요란스럽지 않으며 절제된 모양의 글자로 보인다. 내 눈에 그렇다.
누가 쓴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다음에....
보통 사찰의 일주문에 그려진 글자를 읽는 방법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 천축산불영사'
'천축산'은 불영사 뒤편에 있는 제일 높은 산이다.
2. 일주문 아래의 하얀 목련
▲1. 특산물을 파는 현지 주민들/ 물건들을 자세히 보니 전부가 현지에서 수확한 것들이다.
어떤 곳의 관광지에 가면 다른 곳에서의 물건과 수입된 것 들을 판매하는데 이곳은 전량 현지 주민들이 수확하고 재배한 것들을 판매한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주민의 말도 그렇게 내 눈에도 지역 특산물로 보여서 기분은 좋았다. 한 마디 던졌다.
앞으로 절대 이곳 주변의 지역 특산물이 아니면 팔지 않는 것이 좋지 않냐고~! 아줌마들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모르겠다.
서있기 좀 뭐해서 산나물 5,000원 어치 사서 다음날 밥에 쪄서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
2. 칡/말렸나 보다.
3. 올해 처음 수확한 햇두릅이다. 앞에 놓은 것이 10,000원 이라고 한다. 햇두릅이라서 그런지 가격이 조금 높은 감이 있다.
▲1.불영사 주차장에서 걸어나와 36번 도로변의 버스 정류장
2. 삼근과 울진방면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
▲울진 전역의 시내버스 시간표 이다. 울진발--->불영사 방면/ 서면---> 울진방면의 시간을 1,2,3 번으로 정리해 두었다.
참고: 불영사는 서면에서 약 5분 정도 지나 도착을 한다.
▲1. 걸어서 불영사에서 서면까지 걸어가 본다. 이곳이 옛날 36번 도로에서 불영사로 가는 흔들다리가 있었던 곳이다.
내 기억으로는 1977년 여름, 이곳으로 흔들다리를 건너 불영사로 들어갔으며 흔들다리를 건널 때 무서워 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때 이 다리를 건너 불영사로 가기도 했었다.
이길로 계속가면 현재 불영사의 새로지은 '천축선원'쪽으로 가게된다.
2. 불영사 계곡/ 도로에서 내려다 보니 아찔하다.
▲1. 도로를 따라 서면쪽으로 오다보면 '불영사 계곡'의 안내 간판이 보인다.
2. 도로변의 농부들의 작업/ 부부 인듯하다. 감자를 심는 것 같다. 이거 모두 추수해 보아야 100만원 정도 나올까 모르겠다.
그 나마 판매처가 마땅 찮아 지역농협 등에서 낮은 수매가에 거둬간다.
▲1. 36번 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 계곡의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 본다. 울진에 살면서 이 동네는 처음이다.
2. 밭 한쪽에 돌 무더기가 있는데.....아이고~ 밭에 있는 돌을 골라낸 것들이다.
밭 임자의 노고가 읽혀진다.
▲1. 도로변의 녹색길
2. 이 다리를 건너 마을로 접어들었다. 집도 몇 채 없는 마을
3. 한참을 걸어 '사랑바위 휴게소'아래의 계곡물을 건넌다./ 이곳의 돌다리는 정말 크고 분위기가 좋다.
4. 가운데 보이는 마을이 서면 시내이다. 옛날 서면 중학교 폐교 옆을 지난다.
▲1. 서면에서 집구조가 이상한 집들이다. 일제시대때 지은 집들의 형태로서 한 개의 긴 지붕에 몇 가구의 집들이 입주해 살고 있다.
탄광촌의 집구조도 이렇게 비슷한 것 같았는데....
2. 긴 한 지붕 밑에 몇 가구가 분리된 집구조이다.
3. 조금 걸어서 서면 시내가 보인다.
4. 울진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산리쪽에 성류굴 북문 입구의 멋진 벚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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