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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울진지역

[북면]응봉산(998.5m),2016년 2월 20일(토) /응봉산에도 봄이 멀잖았다.

 


생활에 쫒기다 보면 이렇게 봄이 내 가까이 와 있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호월 1리 동네 길옆으로 벌써 매화가 많이 피었다.

 

 


 



[북면]응봉산(998.5m),2016년 2월 20일(토) /응봉산에 봄이 멀잖았다.

● 일정: 2016년 2월 20일(토). 오전 10시~ 오후 3시 30분

● 코스 및 산행거리 : 응봉산 능선 코스

● 산행자: 알비노 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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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 와닿는 날씨는 아직은 겨울인듯 하지만 땅의 기운은 어딘지 모르게
봄이 멀잖은 것 같다.

배낭을 챙겨 길을 나선다.

홀로 움직이는 마음은 늘 편하다. 내가 사는 울진의 농촌마을은 명도리에서 응봉산으로 가는 길은 몇 갈래의 길이 있다.

일반사람들이 잘 모르는 길도 있으며 오늘은 울진의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가는 길을 택해본다.

 

아직은 벌판에 농부들의 손길은 바쁘지는 않는 것 같다.

멀잖아 경칩이 지나고 따뜻한 온기가 대지에 퍼지면 농부들의 손길도 바쁘겠지.

울진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호월리, 그리고 정림리로 해서 하당으로 올라간다.

 

가끔은 지나가면서 자세히 둘러보지 못한 정림리의 '정림송정 나무숲' 과 최근에 울진문화원에서 설치한 '장대룡 장군묘' 등의 안내판도 보며 그렇게 움직여 본다.

늘 그렇지만 농촌마을의 풍경을 보는 것 자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
집만 봐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충 짐작도 되고 가끔 운전하면서 만나는 경운기 또한 정답다.

응봉산 정상에는 아직 겨울인듯 하다.
싸늘한 겨울 바람이 기분 나쁘지 않다. 멀리 보이는 산능선과 그리고 또 다른 능선.
아물아물 눈에 보이는 먼 산의 능선들.  그 속에 내 미래의 꿈과 희망을  뭍고 하산한다.

 

덕구온천의 따뜻한 목욕이 오늘의 기분을 더 업그레이드 시킨다. 귀가길에 ' 덕구 주인리 묵집'의 잔치국수 한 그릇과 옛부터 아는 사이인 묵집 아줌마와의 싱거운 농담에 하루가 또 간다.

 

 

 

 

 


진의 전형적인 농촌마을 '호월1리 '이다. 울진의 토속언어로는 '뭘리' 라고 불리기도 한다.
얼마후 모내기가 시작된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농촌마을이 정겹다.

 

 

 

 

얼마전 울진문화원에서 새로 설치한 울진군의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적지의 안내간판이다.
'장대룡 장군묘'. 말무덤과 개남총이 있다.
호월 2리 길 옆에 장대룡 장군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개남총'은 승려 '개남'의 묘라는 뜻이다.

 

 

# 장대룡 장군에 대하여---> 아래의 자료는 울진디지털문화대전 (사이트 주소 http://uljin.grandculture.net)을 참고한 것입니다.

울진군 장대룡 장군은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서 출생하였다.
장대룡 장군은 조선시대 1618년(광해군 10)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판관 및 삼척척사와 경흥방어사를 지냈다.
 1636년 병조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 아래 삼도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을 하고 세자와 삼학사를 볼모로 청나라로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분함을 참지 못하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장대룡 장군은 불영사에서 수도 중인 힘센 승려 개남(介南)과 의논하여 청나라 태종을 암살하여 나라의 원수를 갚자고 결심하고,
 개남과 함께 말을 몰아 청나라 수도 심양으로 잠입하였다.

청 왕실의 궁 안을 살펴본 후에 궁중 화약고를 발견하고 이곳을 폭파하기로 결심하였다.
장대룡 장군은 자신의 의관을 벗어 타고 간 말의 등에 얹은 다음, 승려 개남을 말과 함께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장대룡 장군은 어둠을 틈타 궁중 화약고를 폭파시켰지만 자신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화약과 함께 불타버렸다.

개남은 장대룡 장군의 의관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장군이 입었던 의관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 사리곡 동쪽 왼쪽 기슭 산에 의관장(衣冠葬)으로 매장하였다.
 묘를 의관장할 때 마을 부근의 각 고을 수령들이 모여 치상을 하고 장사를 끝내자, 용마가 슬피 울다가 죽어버렸다.
사람들은 장군의 묘 북쪽에 말을 묻었는데, 이 무덤은 ‘의로운 말 무덤’이라고 전하였다.
그 후 승려 개남도 죽자 장군의 무덤 아래 쪽에 묻고 무덤을 ‘개남총’이라고 불렀다. 요즈음도 불교 신자들이 다녀가곤
한다.

 

 

 

 

봉화- 울진간 36번 도로의 건설현장이다.
많이 진척이 되었으며 울진군 서면의 새점에서 답운재 넘어 옥방 휴게소까지 벌써 임시 개통이 되었다.
이 길이 완공되면 울진에서 영주와 봉화쪽으로 가는 시간이 상당히 단축된다.

 

 

 

 

 

 


울진읍 정림리의 길가에 조성된 '정림송정 마을 숲'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울진읍의 정림리는 옛날 '정림사지'의 사찰이 있던 동네이다.
사찰의 터는 이곳이 아니고 마을의 뒷편에 있으며 그 당시의 흔적은 없고 땅 속에 옛날 사찰의 기와 조각만이 눈에 띈다.

정림리의 '정림사지'는 나중에 '대흥리'의 '대흥사'로 이전을 하게 되며 또 다시 울진의 동림사로 사찰이 옮겨가게 된다.

 

 

 

 

 

 

 

 

'정림송정 마을 숲'이다.

한 여름에 이곳에 주차후 정자에 올라가 낮잠을 자면 좋을 것 같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정자.

어쩐지 다른 정자 보다는 높이가 높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무 중에 소나무를 좋아한다.

멋스럽게 질리지 않고 늘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언제까지 이렇게 푸를지 염려도 된다.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소나무를 쳐다본다.

 

 

 

 

 

 

 

 

 

 

 

 

 

 

 

 

좌)선방향의 주차장에는 차들이 꽤나 많다.

우) 현재 국내에는 소나무의 에이즈라는 '소나무 재선충병'이 비상이다.

이 병에 걸리면 약은 없고 전부 베야 한다. 베는 것도 한계가 있고 일본이 이 병으로 몸살을 앓았고 많은 소나무가 죽었다.

국내에서는 포항과 영덕, 그리고 최근에는 안동에도 이 병에 걸린 소나무가 발견이 되어 산림청에서는 비상이다.
'소나무 재선충병'은 공기로 전염이 되지않고 인위적으로 차량과 고사목의 이동 등 으로 인해 애벌레가 이들의 이동중에 뭍어서
이동된다.

 

산림청에서 임의로 재선충병의 방지를 위해 고사목의 불법 이동 등을 신고하는 사람에게 2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현수막이다. 우리는 이 병의 방재에 적극 협조하고 특히 울진군의 서쪽지역에는 유명한 '울진 금강소나무'들이 분포되어 있다.
산불조심과 재선충병 예방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산길을 다니다 보면 묘지 앞의 비석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대부분 '통정대부'와 '통훈대부'의 비석이 많다.
둘 다 조선시대의 품계이며 '통정
대부'가 지위가 높다.' 통정대부'는 당상관이고 '통훈대부'는 당하관이다. 
쉽게 말하면 당상관은 대청에 올라갈 수 있고 당하관은 대청에 올라가지 못하는 자리.


여기 비석은 비석의 색깔로 봐서는 훗날 후손들이 만들어 놓은듯 하다.
후손들이 선조들의 업적을 그냥 두기 아쉬워 다시 생전의 공덕을 기리는 의미로 비석을 세웠는데  그 당시의 공적을 부풀려 후손들이 비석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 않겠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좌) 贈 通訓大夫 軍資監正 驪興民公諱啓德 之墓/
    증 통훈대부 군자감정 여흥민공휘계덕 지묘/

 

통훈대부 군자감정 " 임계덕"의 묘라는 뜻이다. '군자감정'은 이조 초에 설치되어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정원은
1
명으로 정삼품 당하관 이다.
 

 

3품 중 문관의 계급에는 상급계급과 하급계급이 있는데 상급계급은 통정대부라고 하고 하급계급은 통훈대부이다.
통훈대부는 기술관이나 서얼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등급이었으며 당하관이다.

이조 초에 설치되어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정원은 1명으로

당상관과 당하관의 구분은 조정에서 정사를 볼 때 대청에 올라가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으로 왕과 함께 정치의 중대사를 논의할 품계를 가리키는 구분이다. 즉 당상관은 정책의 입안 등을 논의하며 당하관은 주로 정책의 실무를 책임지는 품계이다.

 

 

조선시대 품계

 

 

 

 

 

 

제1 헬기장에서 조금 올라가면 너럭바위가 있는데 한 여름철에 여기 앉아 휴식을 하면 좋은 자리이다.
우)바위에 붙어 있는 예쁜 소나무이며 응봉산 주변의 배경과 더불어 좋은 풍경을 연출한다.

 

 

 

 

 

좌) 산악회원들이 정상에 올랐다.

우)정상이다.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다. 아마 점심을 먹을듯 하다.

 

 

 

 

 

 


좌) 정상에서 아래쪽으로

우) 앞에 보이는 능선은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의 능선이다.

호산방면의 구 휴게소에서 응봉산 정상까지 오지 산행을 할 수 있다. 산악회원들의 가끔 다니는 곳이며
능선에서 보면 호산에서 태백쪽으로 가는 일반도로를 볼 수 있으며 송이를 지키는 움막 등을 가끔 볼 수 있는 곳이다.
단독산행은 위험하며 일반 등로보다 등로가 험하다.

 

 

 

 

 

 

 

정상에서 아래의 덕구호텔이 훨히 내려다 보인다.

우) 정상에서 원탕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산림훼손 방지를 위해 얼마전에 데크를 설치해 두었다.
산림과 산 훼손에 많은 도움이 될듯 보인다.

 

 

 

 

 

산 정상에서 보는 먼 산의 능선들이 겹쳐 있는 것을 보면 많은 것이 생각난다.
노랫말에 나오는 '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사나?' 라는 것과

저렇게 산야는 넓는데 왜 사람들은 땅 때문에 그렇게도 싸우는지.

 

 

 

 

 


능선으로 내려오는 길에 길 양편에 늘어선 소나무 군락지가 머리를 시원케 한다.

 

 

 

 

▲ 좌)산능선에서 내려오다 보면 경상북도와 강원도를 가로지르는 경계로 통하는 등산로 갈림길을 지난다.
그냥 바로 내려오면 된다.

우) 여전히 덕구온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좌)덕구 온천 앞의 지역 할머니들이 파는 노전에 잠시 들러 양대 한 봉지를 구입했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우) 일전에 덕구호텔 입구에 오뎅과 잔치국수 파는 분식코너가 있었는데 리모델링하고 새로운 스넥코너가 오픈했다. 불행히도 내가 좋아하는 잔치국수 집은 사라졌다.

 

 

 

 

 

 

 

▲좌)커피도 파는 모양이다.

우) 오뎅 육수물에 홍게 한 마리도 들어가 있다.

 

 

 

 

 

 

 

좌) 스넥코너의 주인인데 상당히 상냥하다.

우)떡복이도 판매한다. 아이들이 좋아할듯

 

 

 

 

 

 

좌) 스낵코너의 전경이다. 호텔 앞에 위치해 있다.

우) 북면, 울진방면에서 이곳까지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울진대게 축제관련 포스터가 붙어 있다.

우) 온천에서 목욕하고 내려오던 길에 역시 '주인리 묵집'에서 국수 한 그릇.

오른쪽 옆으로는 연탄난로가 있는데 늘 정겹다.
응봉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엔 이 집에 들려 국수를 먹는다.
토종묵과 국수류와 막걸리 등 을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