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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해파랑길

[해파랑길 20코스] 봄바람이 해풍을 타고 산들산들 몸을 적시는 해파랑길~ /영덕 해맞이 공원-풍력단지-고불봉-강구항/17.8Km

평소에 눈에 익은 풍경이다.
농,어,산촌마을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들의 골목길 풍경이다.

이길을 걸으니 어쩐지 마음이 푸근하다.
이웃끼리 여러가지 애환이 서려있는 풍경 같기도 하고, 걸으며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집집마다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그런 풍경이다. 

 

 

 

 

 



 # [해파랑길 20코스] 봄바람이 해풍을 타고 산들산들 몸을 적시는 해파랑길~ /
   영덕 해맞이 공원-풍력단지-고불봉-강구항/17.8Km

1.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총 10개 구간 50개 코스이며 거리로는

      약 770Km 이다. 

     2.교통편: 교통편은 저희가 움직인 동선에 따라 소개해 드립니다.
      - 울진-->영덕군 창포마을(코자자 펜션 앞) : 자가용 이동

      - 강구버스터미널--> 원점회귀: 영덕군 시내버스 (비용 1,200/1인/ 30분)

     3. 특징

       해맞이 공원과 풍력발전소 주변의 풍경은 아주 뛰어나다.  
         거대한 풍력발전기 밑으로 걸으며 생각나는 것은 발전기가 전력을 생산한다는 것 외에 자연을 향한 인간의 도전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풍력발전기 단지 주변에서 동해와 서쪽 방면의 산에 대한 조망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하지만 주변의 나무가 별로 없다.

         옛날에 이곳에 산불이 나서 그런지 아니면 토양 자체가 나무가 자라는데 좋은 환경이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울진군의 산과 비교해서 나무의 양이 아주 작다.

         대형버스를 이용해 관광온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띈다.

         전기를 생산한다는 것 이외에 이곳은 여러가지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풍력발전단지를 지나 임도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 제법 높은 고불봉을 지나게 된다.
         고불봉에서 영덕읍의 전체 조망이 눈에 들어오며 구름다리,,그리고 강구봉을 거쳐 강구 시내로 내려오게 되는데

         고불봉에서 강구봉까지 오르락 내리락 높은 산은 아니지만 꽤나 걷기에 숨이 차다.

         해맞이 공원에서 강구버스터미널까지 산길 초보자가 걷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아닐까 싶다.

         이 구간은 1/4 은 산책길, 나머지 구간은 중급정도의 등산길이라 표현하면 될 것 같다.

           

 

 

 

 

 

 

 

구간별 특징을 기록해 봤다.

 

 

 

 

 

 

고저도/ 고불봉을 중심으로 오른쪽 구간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구간이 많아 꽤나 숨이 차는 구간이다.

 

 

 

 

 

 

     
  #[해파랑길 20코스] 봄바람이 해풍을 타고 산들산들 몸을 적시는 해파랑길~ /
    영덕 해맞이 공원-풍력단지-고불봉-강구항/17.8Km

 
    1. 코스:  영덕 해맞이 공원( 창포마을 쪽 코자자 펜션) -풍력단지-고불봉-강구항/17.8Km

    2. 참가자: 홍양기, 알비노(2명)

   
처음 가보는 해파랑길 영덕구간의 매력은 역시 동해의 조망이다.
     해안가의 지대가 울진군 지역보다 높은 까닭인지 높은 산에서 보는 동해의 조망이 울진보다 훨씬 낫다.
     풍력단지의 수 십개 발전기와 동해가 어울려 무척 조화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평소에 포항,대구 방면의 7번국도를 달리며 차 속에서 그려본 영덕의 풍경과는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풍력발전소를 만들어 놓은 각 지자체의 담당자가 들으면 기분 나쁜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난 평소 태백시의 피재나 대관령,

    그리고 이곳 영덕군의 풍력발전소를 볼 때 마다  지자체 별로 국민들의 반(反)원자력발전소의 영향과 관광상품으로 
    혹시 이런 풍력발전소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이다.

    풍력발전기 한 대 만드는 비용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투자대비 전력 생산량이 원자력발전소, 화력발전소 등의 
    주력발전소 만큼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암튼 영덕의 풍력발전소를 지나가며 모든 풍경이 아름다우니 이런 의구심을 갖는 자체도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냥 즐기면서 걷는데 열중하며 걸었다.

   
    길이가 수 십m 가 되는 발전기 아래를 지날 때 ' 윙, 윙',   날개에서 나는 소리는 혹시 걷는 도중에 떨어지면 어쩌나 할 정도로

    중압감이 들었다.

 

    발전소내에 위치한 '전시관'!
    국내의 많은 종류의 전시관에 들려보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전시관의 형태는 소위 '박제 전시관'이다.
    한 번 시설물을 만들어 놓으면 바꾸기도 힘들고 판에 박은 듯한 그런 전시관이다.

    체험시설이라는 명목의 설치물은  유치원 아이들과 초등학교 2~3학년이 즐길 수 있는 체험시설이다.

 

    입장료의 결제는 카드결제가 안된다고 한다. 카드결제는 소액의 결제라 해도 부가세가 붙게 된다.

    부가세는 국가의 세금으로 들어가는데 이런 곳에서 카드결제가 안되고 현금결제 밖에 안된다고 하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입장료가 싸서 그런지 아니면 국가에 내는 세금이 아까워서 그런지 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물의 입장료는 현금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타당성에 맞지않다.

 

    입장료를 계산하려다 마침 초등학교 학생의 자녀와 같이 놀러온 젊은 부인이 안절부절한다.
    카드 결제가 안된다고 하니 한 마디 반박도 못하고 이내 뒷걸음 친다.
    옆의 초등학생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발전소를 벗어나서는 임도를 따라 한참을 간다. 한적한 임도이다.

    이상하리 만큼 이곳 발전소 주변의 산에는 나무가 없다. 산불이 나서 그런가 하고 생각을 해봤지만
    예전의 산불 흔적은 없는 것을 보니 토양이 나무가 자라기에 적당하지 않나 보다.   
 
    점심시간이 되어 적당한 곳에 배낭을 눕혔다. 오늘도 역시 라면이다.

    등산와서 먹는 라면에는 반찬이 필요없을 만큼 배고픔과 기분이 반찬이다.
    통무우 김치 몇 개로 반찬을 대신하고 다시 고불봉을 향해 출발한다.

    고불봉으로 향하는 기점 부터 편안한 길이 아니고 산길이다. 구름다리는 거쳐 강구봉까지 오르락 내리락 한다.

    해발은 높지 않지만 만만치 않다.
    지도상으로 볼때는 전혀 그런 감이 오지않았는데  완전히 예상밖의 코스에 스스로 놀란다.
    강구항에 가까이 와서는 몇몇 산책하는 사람들도 오고가고 해파랑길을 단독 종주하는 산꾼도 만났다.

 

   군데군데의 쉼터에서 맞는 봄바람!
   기분이 상당히 좋을 만큼 땀을 식혀준다.
   강구봉에서 바라보는 강구항 전경이 시원해서 좋다. 대구, 포항방면으로 다닐 때 이용했던 7번국도도 눈에 들어온다.
   강구항으로 내려와 강구시내의 풍경을 감상하며 걸음을 옮긴다.
   조금 덥게 느껴지는 날씨에 강구터미널에 도착후 마시는 이온음료의 맛이 목구멍에 찰싹 들어붙는다.
  
   택시를 타고 원점회귀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 길을 좋아하는 의미가 퇴색할까 이내 생각을 접고

   40분여 기다린 끝에 원점( 창포마을)까지 가는 시내버스에 오르며  1,200원의 버스비를 지불했는데 이렇게 작은 금액으로 
   부자된듯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어쩜 초등학교 시절 작고하신 부모님께 세뱃돈 받고 난 뒤의 기분과 똑 같다.

 

 

 

 

 

 

 


 

 

창포등대 조망대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풍력발전단지로 진입하는데 길 찾기가 꽤나 힘들다.

왼쪽에 '코자자 펜션'이 있는데 바로 오른쪽으로 20m 정도 진입후 오른쪽 밭길로 이동하면 된다.

길이 정비되어 있지 않으며 군데군데 해파랑길 시그널이 달려 있다.

 

 

 

 

 

 

 

 

 

 

) 코자자 펜션 오른쪽으로 진입

우) 진입후 밭뚝 길을 걸어가는데 길의 모습이 이렇다. 마침 봄이라, 길 바닥이 쑥밭이다.

 

 

 

 

 

 

 

 

 

 

 

 

 

 

 

 

 

 

 

 

 

 

 

 

 

 

 

 

 

풍력발전기 밑으로 걸어가는데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엄청 크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국립영덕청소년 해양환경체험센터'이다.
명칭이 꽤나 긴것 같은데 이런 건물은 명칭도 간략하게 하면 어떨까 싶다.

아래쪽 나무들 잎은 서서히 물이 오르고 있다.

 

 

 

 

 

 

 

 

 

 

 

 

 

 

 

 

 

 

 

 

 

 

 

 

 

 

 

 

 

풍력발전소 앞 동해의 모습/ 동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아~~
무슨 체 인지 모르겠다.

암튼 정자 같으면 몇 자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옆에 있는 해설판을 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윤선도 선생의 시를 서예가 초당 이무호 선생이 쓴 글.
초당 이무호 선생은 영덕군 병곡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비의 건립기는 아래와 같다.

 

# 윤선도선생 시비건립기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우뚝솟은 윤선도 선생은 자(字)가 약이(約而)고 호는 고산(孤山)이며 본관은 해남이니 선조 20년 1587년 출생하여 현종 12년 1671년에 향년 85수로 생을 마감 하셨다.
선생은 고별문과에 급제하여 효종과 인평대군의 스승이된후 여러번 출사를 하였으며,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에 계신 임금을 문안하지 않았다는 모략으로 유배의 명을 받아 영덕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선생은 오우가 어부사시가등 수많은 시조를 세전하였고 적벽봉 임경대 고불봉 우곡리등 영덕의 지명이 담긴 주옥같은 시 20여수를 남겨 우리고장에 그문학적 향기를 더하였다.
비록 경치와 풍속은 완연히 달라졌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은 고금이 불변하다.

이에 고산 윤선도선생 시비 건립추진위원회는 문향 영덕에 선생의 족적을 되살리고 그가 남긴 문학의 향기를 널리 전하고자
푸른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시비를 세운다.

 

# 윤선도 선생

 

정철·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의 한 사람으로, 서인(西人) 송시열에게 정치적으로 패해 유배생활을 했다.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부정공(副正公) 유심(唯深)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8세 때 백부인 관찰공(觀察公) 유기(唯幾)의 양자로 가서 해남윤씨의 대종(大宗)을 이었다.

11세부터 절에 들어가 학문연구에 몰두하여 26세 때 진사에 급제했다. 1616년(광해군 8) 이이첨의 난정(亂政)과 박승종·유희분의 망군(忘君)의 죄를 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당해, 경원(慶源)·기장(機張)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풀려났다.

고향인 해남에서 조용히 지내던 중 1628년(인조 6) 봉림(鳳林)·인평(麟坪) 두 대군의 사부가 되면서 인조의 신임을 얻어 호조좌랑에서부터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에 이르기까지 주요요직을 맡았다. 그러나 조정 내 노론파의 질시가 심해져 1635년 고향에 돌아와 은거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복(家僕) 수백 명을 배에 태워 강화로 떠났으나,
이미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남한산성을 향해 가다가 이번에는 환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을 등질 결심을 하고 뱃머리를 돌려 제주도로 향해 가던 중 보길도의 경치를 보고 반해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여생을 마칠 곳으로 삼았다. 1638년 인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죄로 영덕(盈德)으로 유배를 당해 다음해 풀려났다.
보길도로 돌아와 정자를 짓고 시(詩)·가(歌)·무(舞)를 즐기며 살았으며,
효종이 즉위한 이래 여러 차례 부름이 있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무민거(無憫居)·정성당(靜成堂) 등 집을 짓고, 정자를 증축하며,
큰 못을 파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산릉(山陵)문제와 조대비복제(趙大妃服制)문제가 대두되었다.
남인파인 윤선도는 송시열·송준길 등 노론파에 맞서 상소로써 항쟁했으나 과격하다고 하여 삼수(三水)로 유배를 당했다.

1667년(현종 9) 그의 나이 81세에 이르러 겨우 석방된 뒤 여생을 한적히 보내다가 1671년(현종 12) 낙서재(樂書齋)에서
세상을 마쳤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시비를 가림에 타협이 없어 자주 유배를 당했다. 한편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풍류인이기도 했다.
특히 그가 남긴 시조 75수는 국문학사상 시조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시문집으로는 정조 15년에 왕의 특명으로 발간된 〈고산유고〉가 있다. 이 시문집의 하별집(下別集)에 시조 및 단가 75수가 〈산중신곡 山中新曲〉 18수, 〈산중속신곡 山中續新曲〉 2수, 기타 6수,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40수, 〈몽천요 夢天謠〉 5수, 〈우후요 雨後謠〉 1수 순서로 실려 전한다.

〈산중신곡〉 18수 가운데 〈오우가 五友歌〉는 물·돌·소나무·대나무·달을 읊은 시조로 널리 애송되었다.
〈어부사시사〉는 효종 때 부용동에 들어가 은거할 무렵에 지은 것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각각 10수씩 읊었다. 그의 시조는 시조의 일반적 주제인 자연과의 화합을 주제로 담았다.

우리말을 쉽고 간소하며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한국어의 예술적 가치를 발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숙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출처: 다음백과)

 

 

 

 

 

 

 

 

 

 

 

 

孤山 尹善道 詩

 

去歲中秋在南海(거세중추재남해)
지난해 중추에는 남해에 있으며

茅詹待月水雲昏(모첨대월수운혼) 
수운이 저물녘 모첨에서 달을 맞았네.

那知此夜東溟上(나지차아동명상)
어찌 알았으랴, 이 밤 동해 바닷가에서

坐對淸光億故園 (좌대청광억고원)   
맑은 달빛 마주한 채 옛 동산 그리워 할 줄

 

 

雲消風定絶纖埃 (운소풍정절섬애) 
구름 잦아들고 바람 가라앉아 먼지 끊어지니

正是幽人玩月來 (정시유인완월래)
바로 숨어사는 이 달구경하러 오는 때로다.

敢爲淸遊煩嘿禱  (감위청유번묵도) 
청유를 위해 힘들이며 말없이 비는데

龍鐘應被海仙哀 (용종응피해선애)
늙고 병든 모습 해선께 불쌍히 여겨지리.

 


이 시비의 글씨는 재경 향토서예가 초당 이무호 선생께서 孫過庭(손과정),懷素(회소)와 狂草(광초)의 一人者인 張旭(장욱)의 筆意(필의)에 바탕을 둔 초서체로 揮毫(휘호)한 보기 드문 力作(역작)이다. 後面(후면)의 글씨는 목간서체로 썼고 번역문은 한글 판본체와 한문 廣開土大王碑(광개토대왕비)서체를 섞어 썼다. 시비의건립기문은 한글 민체에 중국의 爨寶子碑(찬보자비) 필의를 담아서 만든 創作體(창작체)이다.

 

 


휴게소/ 커피와 매점인데 그냥 지나쳤다.

 

 

 

 

 

 

 

 

 

 

 

 

현황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으로 유심히 읽어본다.

총 24개의 발전기가 돌아간다.

사업비는 675억 인데 부대시설 비용까지 모두 포함한 것인지 모르겠다. 조경시설과 등 등 해서 그런지...
발전량은 20,000가구 가 1년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울진군내의 전체 가구수에 대한 자료는 잘 모르지만
울진군청 홈페이지에는 전체 세대수 24.590 ( 제공연도는 기록되어 있지않다.)라 한다.


세대수와 가구수가 비슷하다는 가정을 할 때(사실은 한 가구에 여러 세대수가 살 수 있다.)
산술적으로 24개의 풍력발전기가 생산되는 전력량이 1년동안 울진군민 전체가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아심이 든다.

또한 국내의 풍력발전시설이 전력의 생산후 한전에 판매가 되는지 어디에 사용되는지의 설명은 없다.

최근에 농어촌에 정부지원금으로 설치해 준다는 태양광 발전기도 투자금액에 비교해 낮은 전력이 생산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이런 곳에 국비가 들어가고 투자금 대비 효율이 낮으면 역시 예산낭비가 아닌가 싶다.

지자체 마다 업체의 말만 듣고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경향도 짙은 것 같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전시관이다.

 

 

 

 

 

 

 

 

 

 

 

 

 

 

 

 

 

 

 

 

 

 

 

 

동행한 홍양기씨의 기념사진 한 컷

 

 

 

 

 

 

 

 

 

 

 

전시관 입구

 

 

 

 

 

 

 

 

 

 

 

 요금표/ 어른은 1,500원이다.

 

 

 

 

 

 

 

 

 

 

 

좌: 전시관과 입구

우: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실내

 

 

 

 

 

 

 

 

 

 

 

' 관해(觀海)' / 실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뜻은 '바다를 본다'라는 뜻이다.

대행히 글자 해설이 아래에 적혀 있다.

 

 

 

 

 

 

 

 

 

 


안내판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한 컷 찍어봤다.

오른쪽 아래의 글자없는 아이콘이 마음에 든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짐작을 통해 인지를 하라는 의미 같은데

아이콘이 전부 친환경의 의미이다.

 

 

 

 

 

 

 

 

 

 

 

 

어른들은 이곳에서 별 볼 것이 없는 것 같다.

 

 

 

 

 

 

 

 

 

 

 

좌) 지열을 이용한 난방 시스템/ 예전부터 내가 관심있어 하던 분야이다.

우)간단한 체험시설

 

 

 

 

 

 

 

 

 

 

 

 

'여자와 꽃과 나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신없는 분야의 3가지 이다.  동행한 홍양기씨가 '라일락' 이란다.

향기가 정말 좋다.
물론 다른 분야에도 모르는 것이 많지만.

 

 

 

 

 

 

 

 

 

 

좌) 멀리서 바라본 풍력발전기

우) 풍력발전소를 지나 임도를 따라 한참간다.

 

 

 

 

 

 

 

 

 

 

 


영덕읍 시내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고불봉 아래를 내려오면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영덕읍 시내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좌) 일반도로와 만난다.

우) 화장실인데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일반 콘크리트 형의 디자인이 아닌 친환경 디자인이다.

 

 

 

 

 

 

 

 

 

 

 


좌) 이곳에서 배낭을 눕히고 점심을 먹는다.

우) 작년 김장김치인 무우/ 홍양기씨가 갖고 왔는데 맛이 정말 좋다. 김장궁물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뭉컹뭉컹 이빨이 씹히는 소리와 맛이 좋다.

학창시절에 도시락 반찬으로 모친이 많이 싸주셨는데 바로 그 맛이다.

 

 

 

 

 

 

 

 

 

 

 

 

 

 

 

 

 

 

 

 

 

 

 


고불봉을 지나 오르락 내리락 만만찮은 산길을 계속간다. 꽤나 오래 진행된다.

 

 

 

 

 

 

 

 

 

 

 

 

아~~~~ 어느 묘지 앞에 핀 할미꽃이다.

요란하지 않으며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할미꽃의 전설이 궁금해 인터넷을 찾아봤다. 좀 슬픈 이야기이다.

● 꽃말: 슬픈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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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의 전설

 

옛날 어느 깊고 외진 산골에서 할머니가 두 손녀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난했지만 부지런히 일을 하며 어렵게 두 손녀를 키웠습니다.
큰손녀는 얼굴이 예쁜 처녀였지만 마음씨는 고약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은손녀는 별로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마음 씀씀이가 곱고 착했습니다.

"언니. 할머니께서 힘들어하시니 저녁밥은 우리들이 짓도록 합시다."
"어른이 계시는데 왜 네가 설치니? 괜히 너 혼자 잘난 척하지 마!"
할머니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큰손녀를 걱정했습니다.
"에그, 저렇게 속이 좁은 것이 어떻게 시집을 가려는지, 원!"
어느덧 큰손녀와 작은손녀는 나이가 차서 시집갈 때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들을 불러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이제 너희도 나이가 찼으니 좋은 데가 있으면 얼른 시집을 가야지."
큰 손녀는 '네, 할머니!'하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작은손녀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아니에요, 할머니. 전 시집가지 않고 할머니를 모시고 오래오래 살겠어요."
할머니는 작은손녀의 말을 듣고는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얘야, 네 말은 고맙다만 누구나 나이가 차면 시집을 가야 한단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이웃 동네의 부잣집에서 중매쟁이가 할머니를 찾아왔습니다.
"누추한 집에 무슨 일로 오셨수?"
"저, 이웃 마을의 김 부자 댁에서 이 집에 예쁜 처녀가 둘씩이나 있다기에 선을 보러 왔지요."
그 때 큰손녀가 쪼르르 뛰어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중매쟁이에게 큰손녀를 소개했습니다.
"이 애가 제 큰손녀입니다."
중매쟁이는 큰손녀의 예쁜 미모에 홀딱 반해 버렸습니다.
큰손녀는 김 부자 댁에 시집을 갔고, 작은손녀는 먼데 사는 성실한 산지기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작은손녀는 시집가던 날, 몇 번이고 돌아다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할머니, 몸 건강히 계세요."
세월이 흘러 손녀들을 시집 보낸 지도 몇 년쯤 되었을 때 할머니는 홀로 쓸쓸한 마음을 달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너무 늙고 병까지 들어 도저히 혼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들에게 찾아가 이 늙은 할미를 보살펴 달라고 해 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이웃 동네의 큰손녀를 찾아갔습니다.
"여보세요, 여기가 이웃 마을에서 예쁜 색시를 며느리로 맞아 온 부잣집이지요? 저는 그 애의 할미가 되는 사람입니다."
조금 있으려니까 화려한 비단옷에 금목걸이를 하고 금팔찌를 찬 큰손녀가 나왔습니다.

큰손녀는 할머니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자 할머니가 자기에게 얹혀 살러 온 것을 알고는 푸대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큰손녀는 할머니만 보면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할머니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할머니는 큰손녀 몰래 집을 빠져 나왔습니다. 눈앞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오래 오래 살겠다고 하던
작은손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작은손녀의 집은 높은 산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스로 고개를 올라가고 있는데 찬바람이 쌩쌩 불어 왔습니다.

춥고 숨이 차서 할머니는 한 발짝도 더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할머니는 그만 고갯마루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작은손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할머니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작은손녀는 할머니 생각이 날 때면 언덕쪽으로 내려오곤 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 곳에서는 할머니가 계시는 곳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슬슬 집을 나섰던 작은손녀는 거기서 할머니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나! 할, 할머니 아니세요!"
작은손녀는 엉엉 울면서 시체를 양지바른 곳에 묻었습니다.
다음 해 봄, 그 무덤에서는 '할미꽃' 한 송이가
마치 사랑하는 손녀들을 보내고 나서 늙고 병들어 힘없이 살던 할머니의 모습처럼 피어났습니다.

 

 

 

 

 

 

 

 

 

 

철쭉이다.

색깔이 곱다. 수수하고 요란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는 성격의 꽃 같다.

 

 

 

 

 

 

 

 

 

 

 

 

 

 

 

 

 

 

 

 

 

 

 

 

소나무 사이로 봄바람에 흝날리는 갈대

 

 

 

 

 

 

 

 

 

 

 

우) 구름다리

 

 

 

 

 

 

 

 

 

 

 

개인적으로 이런 길을 좋아한다. 걷기에 상당히 편하다.

 

 

 

 

 

 

 

 

 

 

 

강구봉에서 내려오면 일반도로와 만나는데 아래쪽으로 가지말고 오른쪽으로 약 20m 올라오면 강구항으로 내려가는 작은 길이 있다.

 

 

 

 

 

 

 

 

 

 

 

강구항

 

 

 

 

 

 

 

 

 

 

 

 

 

 

 

 

 

 

 

 

 

 

 

 

 

 

 

 

 

 

 

 

 

 

 

 

 

강구항으로 내려가는 길은 작은 골목길이다.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길이다.

 

 

 

 

 

강구항으로 내려오니 예쁜 마네킹 아가씨가 우리를 반긴다.

미래의 AI (Artificial Intelligence , 人工知能/ 인공지능)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강구교'이다. 다리 양편으로 예쁜 꽃들이 단장되어 있다.

 

 

 

 

 

 

 

 

 

 

 


강구교.

 

 

 

 

 

 

 

 

 

 

 

 

 


강구터미널에서 해안도로 방면으로 가는 시내버스 시간표이다.

창포, 축산, 그리고 해맞이 공원 방면으로 가는 시내버스 인데 토요일은 강구항에서 상당히 밀리는 경향이 있음.

 

 

 

 

 

 

 

 

 

좌) 날씨가 조금 더웠다. 터미널에 도착후 이온음료를 한 병 샀다.

우) 터미널에서 시내버스 승차권 구입

 

 

 

 

 

 

 

 

 

 

 

창포마을로 원점회귀하니 저녁 무렵이 되었다.

평화로운 낚시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