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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것들/살아가는 이야기들

죽음에게.3 /어느 스님의 다비식 앞에서

다비식

 

죽음에게. 3
   - 어느 스님의 다비식 앞에서

내가 이제껏 살면서 가보지 못한 곳.
세상의 어느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 그곳은 죽음의 세계이다.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도 없으며 갔다가 내 삶의 터전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곳이다.

다비식은 불교에서 스님이 입적하면 시신을 불로 태우는데 이러한 화장 의식을 불교에서는 다비식이라고 부른다.
우연히 울진군 기성면 영명사에 스님의 다비식에 참석했다.
살면서 친인척의 죽음으로 인해 일반 화장장 장면은 몇 번 봤지만 스님의 다비식 장면은 처음 접했다.

평소에 다비식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어떻게 진행하는지 그 방법도 궁금했다.

다비식의 순서는 법당에서 영결식 후 시신을 다비장에 옮긴 후 연화대에 올린다.
연화대는 아래 철판을 깔고 그 위에 마른 장작을 놓고 시신을 올려놓고 다시 장작과 생통나무를 설치하게 된다.
스님의 다비식을 처음서부터 유골 수습까지 전과정을 지켜보았다.
다비식에는 많은 스님들과 불자들이 참석했다.

현장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시신에 불을 붙이는 예식 후 생통나무에서 내뿜는 연기의 양도 상당했다. 만약을 위해 119 소방차도 옆에 대기했다.
화장 의식은 전문 업체 주관으로 진행되었으며 일 하시는 분들의 동작은 연화대 설치부터 유골 수습까지 숙달된
모습이었다.

우리는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예식에는 날씨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날씨가 좋은 날 사람이 죽으면 우리들은 상주께 "좋은 날에 좋은 곳에 갔다."라고 인사말을 하고
비가 오는 날 사람이 죽으면 " 하늘조차도 슬퍼서 비를 내린다." 라는 말을 한다.

극락 세상에 가며 스님은 '인간의 삶이란 한 조각의 바람이다.' 라는 말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을까
다비식 내내 바람이 분다.

연화대에서 내뿜는 열기는 대단했다. 화력으로 인해 가까이 접근도 하기 힘든 그 불구덩이.
그 속에서 시신이 탄다.
숨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다면 단 1초도 감당하기 힘든 그 화력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참석자들도 수 시간 동안 계속되는 이 행사에 다리가 아픈지 주변의 의자에 앉는다.
나도 서있기에 미안해 참석자들에게 음식을 날라주었다.

몇 시간 동안의 태움 뒤, 연화대 위에는 재와 뼛조각 밖엔 아무것도 없다.
관련 스님들이 유골과 사리 수습에 나선다. 젓가락을 들고 일일이 유골을 수습한다.

만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에 한 인간의 몸뚱이가 한 줌의 재로 바뀌었다. 재는 말이 없었다. 오늘 이 다비식의 주인공인 스님의 열반송은 무엇일까? 듣기는 했는데 귀에 남아있지 않다.

스님들은 입적전에 열반송을 남긴다.
대충 열반송은 길지 않다. 짧은 글에 일평생 수도하며 느낀 글들이 함축돼 있다.

그 유명한 성철 스님의 열반송은 이렇다.

"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평생 수도만 하며 사신 스님이 세상을 향해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였다는데
난 얼마나 세상을 속이며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골과 사리수습의 전과정이 끝났다.

다비식의 주인공인 스님도 내 나이를 사셨을 것이다. 그러면서 인생의 무상함도 알았을 것이며 인생이 짧다는 것도
아셨을 것이다. 나도 최근에 인생이 짧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그러면서 이 짧은 인생에 과연 내가 보람있는 일을 하는지 돌아본다.
하지만 평소에 알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알면서도 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나의 나머지 삶도 그럭저럭 사는 인생일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끝까지 남아 수고하신 분들과 주지스님에 인사드리고 현장을 떠났다.
스님의 극락왕생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