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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것들/살아가는 이야기들

운명(運命)에 대하여

2019년 설날 연휴 때 해파랑길을 걷기 위해 강릉으로 가던 중 동해가 바라보이는 간이 휴게소에서

 

운명(運命)에 대하여

 

" 아이고 내 팔자야! "

가끔은 연세가 많은 이웃 어른들이나 집안 어른들에게서 듣는 말이다.

" 그러지 마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팔자가 어때서요?" 이 말을 던지고 나서 문뜩 내 팔자는 어떤가?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때 서울에 있는 김포공항에 근무를 했다.

독일 국영항공 회사인 'Lufthansa' 한국지사에 몸을 담았었는데 하는 일은 주로 항공기에 실리는 화물을 담당했다.

수출입 화물뿐만 아니라 승객들이 들고 내리는 수하물도 담당을 했었는데 당시 급여 수준은 상당했다.

국내 대그룹 삼성, 현대의 일반 직원보다 월급이 많았으니 나름 자부심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현지에 교육도 자주 가기도 하고,  잘생긴 외국 스튜어디스와 매일 상대를 했으니 요즘 말대로  콧대가 제법 높았다.

 

그때, 김포 가도 옆으로 서민 아파트가 많았었는데 어느 날 퇴근길에 성냥갑처럼 생긴 몇 평 되지 않는 아파트에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난 나중에 나이가 들고 결혼하면 저보다는 넓고 좋은 아파트에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은 아파트 금액에 상관없이 몇  평 정도의 아파트는 눈에 차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훗날 그 당시 성냥갑 같은 서민 아파트 보다 더 좋은 환경에 살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보다 못한 몇 평 안되는 농촌의 작은 함석지붕이 씌워진 보잘것없는 토담집에서 살고 있으니 내 팔자도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남들이 다 하는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작년 강릉 쪽 해파랑 길을 걷기 위해 차를 몰던 중 간이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운전대를 보며 갑자기 인간의 운명과 자동차의 운전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運命)의 사전적 의미는 운명은 숙명이라고도 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참고: 표준 국어대사전)라고 정의가 되어 있지만 한 개인의 운명의 주인은 본인이며 자동차의 목적지를 선택하고 자동차를 움직이는 몫도 운전하는 본인이라는 것. 
쉽게 말해 내 운명을 선택하는 주체나 내 자동차를 어디로 몰 것인가를 선택하는 주체도 나라는 이야기다.

 

난 2년전 암 수술을 받았다.

대장을 30Cm 절단을 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암이라는 악성종양이

몸속에서 자라기까지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까닭은 부모님도 형제도 친구도 이웃의 탓이 아닌 100% 내탓이다.

이렇듯, 개인의 운명은 타인에 의해 좌우될 수도 없으며 어쩌면 죽음까지도 본인의 탓이 아닌가 싶다.

친구의 권유로 비행기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한 것도 자기 결정의 탓이며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입시에 낙방한 것도 부모의 탓이 아닌 자기가 노력을 게을리한 탓이며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고 외출해 집이 홀랑 타버린 것도 자기의 탓이다.  맛있는 반찬을 식탁에 올려 가족의 건강을 잘 챙기는 것은 주부의 탓이며 남들 자는 시간에 새벽같이 일터에 나가 노력해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는 것은 내탓이다.

 

어쨋던 본인이 잘못된 결정을 하던,  잘한 결정을 하던 결과는 본인의 결정에 기인한다.

 

운전은 어떤가?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서울로 가고 싶으면 운전대를 서울로 향하면 되고 대구를 가고 싶으면 운전대를 대구로 향하면 되는 것 처럼 본인의 운명과 자동차의 운전은 결국 본인의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

결국 한 인간의 운명과 운전은 결과가 좋던 나쁘던 행위의 주체는 바로 나다.
그렇다고 사고 날까 두려워 차를 매일 마당에 주차해둘 필요는 없다. 일을 만들어 차를 움직이고 내 목적에 따라 운전하면 그만이다. 결
과가 두려워 새로운 일을 못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내 운명과 내 차 운전의 주인공은 나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주인공은 결국 나다.

 

연꽃!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연꽃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꽃이다.

 

비록 내 팔자가 혹은 내가 처한 운명조차도 열악할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내 행복을 찾아 운전대를 꽉 움켜잡고 액셀을 힘차게 밟아야겠다.

간이 휴게소에서 볼일을 본뒤 차문을 다시 여는 순간 동해의 먼 곳에서 해가 뜬다.
일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