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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추천여행지/문화재·전시·미술관

[울진읍]울진향교/추기석전대제 봉행식(秋期釋奠大祭奉行式)

제관들이 행사의 집전을 위해 대성전 앞에 도열해 있다.

 

 


주소 :  울진군 울진읍 향교로 34-13

○ 전화번호: 054-783-2426

○ 사진촬영일자: 2014년 9월 3일, 오후 1시~

  약도설명: 아래에 지도를 참고하시기 바람

 

○ 울진향교에 대한 설명  

 


○ 울진향교에 대한 설명

 

  - 변천

    울진향교는 1484년(성종 15)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월변동에 건립된 후 1697년(숙종 23) 고성리 성저동으로 옮겼다가
    1872년(고종 9)에 다시 읍내리 옥계동으로 이축하였다.
     한국전쟁 때 대성전 및 서재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이 전소된 뒤 1980년에 명륜당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 형태

    월양산 기슭에 남향으로 터를 잡아 대성전·내삼문·명륜당이 일직선상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법식에 따랐으며,
    대성전 우측에 제기고가 자리하고 있다. 출입문은 축선상에 있지 않고 좌측 모서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향교 좌측 담장 밖에 
    관리사·서재·제물고(祭物庫)가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으며, 전면에 개방된 전퇴를 두고 내부는 통칸으로 바닥
    에 전돌을 깔았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평면은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에 각각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설치하고 전면과 좌우 측면으로 계자난간
    을 둘렀다.

   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인데 지붕은 골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다.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온돌방을 두
   고, 전면에 퇴칸을 설치하였다. 전사청과 제물고는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인데 지붕은 골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다. 교직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다. 평면은 좌측에 부엌을 두고 연접하여 온돌방을 둔 형태이다.

 

 

  ○추기석전대제 봉행식(秋期釋奠大祭奉行式)

 

   -의미와 뜻
  
   울진향교 석전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음력으로 매달 첫째 정(丁)이 드는 날]에 울진향교 문묘에서
   사성(四聖)·십철(十哲)·칠십이현(七十二賢)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다. 또한, 선현과 선사들의 학문과 인격, 덕행과 사상을
   단순히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숭모하고 존중히 여기며 스승을 높이하고 진리를 소중히 하는 기풍을 채득하기 위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각 지방의 향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新學制) 시행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 따라서 종교적 기능으로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 동지와 공자탄일 등에 제를 올리고 있다.

 

    - 석전대제의 절차

   
다음은 2004년 2월 28일 오전 10시 30분에 울진향교 대성전[당시 전교 남호열]에서 봉향한 석전제의 절차이다.
      이날 초헌관은 김용수[당시 울진군수], 아헌관은 남용범[당시 76세, 울진읍 읍내리], 종헌관은 전찬경[당시 76세,
     죽변면 후정리]이 맡았다.

    석전제 전날 저녁에 제관, 집사 등 4명이 전설을 마치고 향교 내에서 하룻밤을 잔다. 석전제 당일이 되어 제관과 참배객이
     대성전  뜰 앞에 정렬하면, 석전제의 진행 담당자인 도집예의 주관으로 알자(謁者)와 찬인(贊引)이 제관을 안내하여 대성전
     안으로 들어간다. 그 후 제관들은 각자의 위치에 서며, 국기에 대해 배례를 한다.

      개독이라하여 대축관이 각 위패의 뚜껑을 열면, 제관 전원이 한꺼번에 4번 절을 하는 참신을 수행한다. 그 후 대축관이 흰색 
       비단을 접어 폐백 함에 담아 5성 중 맨 먼저 공자, 그다음 순서로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의 위패 앞에 바치는
     행존폐례(行尊幣禮)를 시행한다. 그다음에는 시장, 군수, 전교 중의 한 사람이 초헌관이 되어 공자, 안자 등의 순으로 술잔을
    올리며 대축관은  축문을 읽는 행초헌례(行初獻禮)를 시행한다.

     그다음은 지방의 유지, 기관장 중에서 선정된 아헌관이 오성에게 각각 잔을 올리는 행아헌례(行亞獻禮)를 행하고, 지방 유림
    중에서 선임 된 종헌관이 오성에게 각각 잔을 올리고, 세 사람의 제관이 한꺼번에 4번 절을 하는 행종헌례(行終獻禮)를
    시행한다.
   유림 중에서 선임된 8명의 헌관이 송나라 4현과 우리나라 18현 위패 앞에 각기 잔을 올리는 행분헌례(行分獻禮)를 행하고,
   폐백을 드린 비단과 축문을 초헌관과 대축관이 대성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불을 사르고 그 재를 북쪽 땅에 구덩이를 파고
    묻는 행망료례(行望燎禮)를 행한다. 알자가 초헌관에게 제례가 끝났음을 보고하면 제관 전원이 대성전 밖으로 나온다. 집사가
   위패의 뚜껑을 닫은 후 모든 집사들이 4번 절한다. 이로써 석전제의 모든 의례가 끝난다.
  [출처] 울진디지털 문화대전



 나의 부친은 생전에 많은 일은 하지 않았지만 고향에 관한한 많은 애정을 가지신 것 같다. 
 어려서는 잘 몰랐지만 세월이 갈수록 부친의 살아 생전, 향 울진을 위해하신 많은 일들이  의미있는 일로 다가오는 것은 부자간
 이라서 보담은
 그 자취들이 고향을 위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석전대제 봉행식에 참석을 했다.
  울진에 살면서 이 행사가 있는지는 알았지만 자세히 보기에는 처음이였다.
  내가 어릴적에 아버님이 향교행사에 간다는 행사가 
  ' 석전대제 봉행식'이였기 때문이다.

  우연찮게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봄, 가을 두 번씩 공자님에 대한 제사의식이다.
  행사의 절차 뿐만 아니라 제대에 놓이는 음식도 전부가 생소하게 보여졌다.
  그리고 육류들은 거의 다 생고기를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행사의 절차가 까다로워 제주(제사를 주관하는 사람) 조차도 제사 도중에 실수를 하는 것은 당연하게 다가왔다.
   우리사회의 윤리의식이 여러 군데군데에서 무너져 내리는 요즘.
   이 행사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할지언정 우리사회의 전통윤리 의식을 다시금 일깨웠음 하는 개인적인
   바램으로 행사내내 자리를 지켰고 사진 자료도 남겨본다.
   


울진향교 들어가는 입구/ 도로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입구의 모습

 

입구에 들어서니 행사준비도 바쁘다. 우중이라서 조금 행사진행에 어려움이 있다.

 

울진향교에 대한 안내간판

 

오늘 행사를 주관할 제관들의 성함을 적어두었다.

 

대성전의 입구인데 가운데 문으로 다니지 않고 옆문으로 출입을 하게된다. 나도 가운데 문으로 들락거리다 한 소리 들었다.

 

봉행식전의 모습

 

공자님의 제상이다. 

 

최치원 선생의 성함도 보인다.

 

 

 

행사전의 모습

 

 

 

제사 준비를 하는 방

 

 

제사지내기 전에 이렇게 손을 씻는 예식을 갖는다.

 

제사전에 대기하는 모습

 

국민의례

 

제사를 지내기전에 서로 의상의 맵시를 고치고 있다.

 

제관의 이름을 부르면 모습을 드러낸다.

 

 

 

 

 

 

 

 

행사가 엄숙하게 진행된다.

 

 

 

공자님의 다른 말로 ' 대성지성 문선왕' 이라 하는가 보다.

 

 

잔을 올리고 있다.

 

송시열 선생님도 보인다.

 

 

 

문 밖에 참석한 내빈들과 지역 유림들

 

제사를 다 지내고 혼백을 이렇게 땅에 뭍는다.

 

향교 뒤편을 한 번 둘러봤는데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다 . 여기 뒤편은 울진 월성공원이다.
나의 어린시절 놀이터 이기도 하다.

 

개보수 공사를 정부지원금으로 진행했다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