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베드로 성당입구
언론에서 가끔 보도되는 베드로 성당 앞 광장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이 얼굴을 내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은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대성당을 말한다. 바티칸 대성당(Basilica Vaticana)이라고도 부른다.
베드로 성당에 들어선 순간 우선 두가지에 놀랬다. 실내의 규모와 가끔 앉는 교황님의 자리와 그리고 내부 곳곳에 설치된 작은 성당이다. 성당안에 작은 성당! 미사를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는 내부의 모습이다.
난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주님에 대한 기도가 꼭 유명한 성지에서만이 주님에게 잘 들릴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한 번은 진심에 담긴 기도를 했다.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도 흘리리면서.
이곳 저곳 더 둘러보고 싶은데 바쁜 여행일정이 그걸 뺏어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분볐다. 유럽의 유명한 성당은 사진촬영을 금하는 곳이 많은데 베드로 성당은 사진촬영을 허락한 것이
성당내부를 둘러본 후 베드로 성당 앞의 광장에 나왔다. 이 광장이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광장이다. 마침 공사중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어수선하다. 광장 앞의 분수대는 관광객들의 약속의 장소로 사용되는 듯 했다. 베드로 성당과 박물관 등 규모가 워낙 커다보니
성베드로 성당의 관광은 가기전에 꼭 둘러볼 것을 미리 정리해서 그곳을 집중적으로 관광하는 것이 좋다. 베드로 성당에서 꼭 봐야할 곳
1. 중앙 제단 옆에 있는 베드로 동상의 발을 만지며 소원을 한 번 빌어보는 것 2. 성당 지하에 있는 역대 교황의 시신이 있는 무덤에서 성베드로의 유해 3. 성 베드로 성당 정상으로 올라가서 성 베드로 성당의 전체 모습과 로마시내를 보는 것
나는 이 세가지 모두를 놓치고 말았다. 출국시 집에서 신던 운동화 그래도 신고 비행기에 탈 정도였으니 준비가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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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드로 성당의 내부모습/ 정 중앙이 교황의 좌(座)이다. 미사중에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엄숙하고 거룩한 분위기였다.
▲ 성당 내부의 위치도 /베드로 성당의 지하에 내려가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 성인 INCENTIVSA PAVLO
▲ 가운데 보이는 것이 교황의 좌(座)이다. 근엄하고 상당히 엄숙한 분위기이다. 그 앞으로는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
▲ 성녀 헬레나의 상이다.
----------------- 성녀 헬레나에 대한 자료
●성인명: 헬레나(Helen)
●축일: 8월 18일
●신분: 황후
●활동연도: 250?-330년
●같은이름 : 헤레나, 헬렌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Helena)는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의 드레파눔(Drepanum)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270년경에 로마(Roma)의 장군인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를 만났는데, 그녀의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둘은 결혼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콘스탄티누스가 태어났다. 293년에 남편 콘스탄티우스는 그리스도교의 박해자 중 한 명인 막시미아누스 황제 휘하에서 카이사르(Caesar)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헬레나와 이혼하고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붓딸인 테오도라(Theodora)와 결혼하였다.
306년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사망하자 콘스탄티누스의 휘하 군인들이 그를 황제로 선포하였고, 312년 10월 12일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격파하고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로 입성하였다. 그 후 그는 그의 어머니인 헬레나에게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칭호를 드렸다. 헬레나가 언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녀의 노력으로 밀라노(Milano) 칙령을 반포하게 하여 로마 제국 내에서 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투옥된 모든 신자들을 석방하였다.
그녀는 이때부터 그리스도교적인 모든 일을 도우면서 수많은 성당을 짓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다. 그 후 아들이 동서 로마제국 모두를 장악한 뒤에 만년에 접어든 헬레나는 325년경에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성지에 오래 머물면서 갈바리아(Calvaria) 언덕에 성당을 세웠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성녀의 상징은 십자가이며, 이콘에서 십자형의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인은 오직 헬레나뿐이다. 그녀는 330년 8월 18일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Izmit)인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사망하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안장되었다.
▲ 베드로 성당안의 베드로 교황의 좌(座). 무척 엄숙하고 근엄한 분위기이다.
▲ 베드로 성당안의 작은 성당에서 마침 미사가 열리고 잇다.
▲ 이 아래에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실제로 내려가 보지 못했다.
▲ 베드로 무덤과 베드로 교황의 좌(座) 주변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
▲ 천정의 모습
▲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의 시신
▲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의 모습
● 축일 8월 21일 성 비오 10세(Pius X) 교황
● 활동연도 / 1835-1914년
● 같은이름 / 비우스, 피오, 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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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대해
1835년 6월 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의 리에제(Riese)에서 우체부인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사이의 10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주세페 멜키오레 사르토(Giuseppe Melchiorre Sarto)는 어머니의 신앙에 많은 영향을 받아 1850년에 파도바(Padova) 신학교에 들어갔다. 1858년에 사제가 된 그는 향후 17년 동안 본당 사목자로서 생활하다가 1884년 9월에 만투아(Mantua)의 주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베네치아의 추기경과 대주교가 되었으나, 베네치아 정부와의 문제로 인하여 18개월 간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는 레오 13세(Leo XIII)를 계승하여 교황이 되었다. 그는 교회법 개정을 착수했고, 불가타 성서 개역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시편과 성무일도서 개정을 명하였다. 특히 그는 성체를 자주 영하도록 권장하였다. 그의 재임기간은 '근대주의'와의 투쟁이 많았고, 1910년에는 프랑스 사회 운동인 '시용'(Sillon)을 비난하였다.
교황 비오 10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22일 후인 1914년 8월 20일에,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것을 개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1951년 6월 3일 복자품에 올랐으며, 1954년 5월 29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그럼으로써 1712년 비오 5세가 시성된 후 처음으로 시성된 교황이 되었다.
'성체의 교황'으로 불려 - 축일은 8월 21일
성 비오 10세 교황은 1853년 6월 2일 이태리 「리에세」의 작은 마을에서 출생했다. 본 이름이 요셉 멜기오르 사르또인 삐오10세 교황은 『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난하게 죽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빈민들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요셉 외에도 9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는데 2명은 어려서 사망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바느질과 농사 등 힘든 일을 했다. 그는 1878년 9월 18일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그 후 「만뚜아」의 주교가 되었고 1893년에는 「베니스」의 대주교겸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그후 10년이 지난 다음 그는 교황 레오 13세의 후임으로 새 교황에 선출되었다. 그의 모토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의 특기할만한 사적 중에는 신앙을 견고히 하기 위한 운동과 신자의 영신적 양식이 되는 성체를 자주 영하기 위한 회칙을 반포한 것이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성체를 영할 것을 허용한 교황 비오 10세는 『성체는 천국으로 가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며 매일 성체를 영하도록 권했다. 그래서 그는 「성체의 교황」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그는 1차 대전이 일어날 무렵인 1914년 선종했으며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1954년 5월 29일 성인품에 올랐다.
▲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의 시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
▲ 베드로 성당에서 나와 잠시 눈길이 가는 곳. 베드로 성당의 근위병의 모습이다.
깔끔한 복장에 예쁜 얼굴을 하고 있는 모델 같다.
▲ 외국에서 온 어느 수녀님과 신부님들
▲ 베드로 광장의 분수대/ 관광객들의 약속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것 같았다. 시원한 분수대의 물줄기가 마음의 여유를 준다.
▲ 베드로 성당과 광장을 지나 걸어서 원형 경기장 콜롯세움으로 이동한다.
베드로 성당을 나서 나는 일행과 헤어졌다. 단체여행때 옵션으로 등장하는 택시 투어!
별의미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 혼자 도보로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하고 베드로 광장을 나와 원형 경기장 콜롯세움까지 걸어서 움직여 본다.
골목의 이곳저곳과 로마인들의 풍습과 문화를 잠시나마 젖어보기로 한다.
▲ 티베르 강의 모습/ 사실 나는 이 강 주변을 걸으면서 강이름도 모르고 걸었었다. 강 옆으로는 사람들이 앉아 놀수 있는 장소들이 많았다.
▲ 다리 위에서 잠시 기념사진 한 장 남겨본다.
▲ 시내를 지나다 보니 어느 광장앞에서 젊은이들의 재미있는 춤이 있었다. 한참을 추고난 다음 어디론가 사라진다.
▲ 역시 유럽은 길거리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그냥 가게 앞에서 편히 이야기하고 마시고 그런다.
▲ 앞치마의 모습이 재미있어 잠시 둘러봤다.
▲ 이탈리아에는 이런 차들이 많이 굴어다녔는데 정말 탐이 났다. 업무용 차량인데 깜찍하고 정말 갖고 싶은 차였었다.
추정가격은 약 1500만원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소형차의 도로 점유율이 상당히 높았다.
그들 국민성의 실용주의를 한 분에 알 수 있었으며 땅도 좁은데 중,대형차 위주로 구입을 하는 우리나라 국민들과는 대조적이었다.
▲ 나도 잠시 도로에 앉았다 움직였다. 다리도 아프고 여행은 어쩜 체력전과도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걷으며 신경쓰이는 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서 일까? 등산으로 다져진 내 체력도 여행에서는 별수 없는듯 했다.
▲ 아직도 발굴중인 유적들/ 발굴하는 것도 몇 년을 걸쳐 발굴하는듯 했다.
▲ 발굴중인 유적들/ 시내 전체가 유적들이다.
▲ 길을 가다 옛병사들이 있어 말을 걸었다. 사진 한 장 찍을수 있냐고?
찍고나서 알았다. 돈을 달랜다.암튼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봤다.
▲ 이탈리아의 유명한 '젤라토' 아이스 크림. 스위스에 있는 누님이 꼭 먹어보라고 해서 한 번 사서 먹어봤는데 역시 맛이 짱이다.
▲ 이탈리라의 '젤라토'아이스크림. 이탈리아를 여행하시는 분들은 꼭 한 번 사서 먹어보길 바란다.
▲ 콜로세움을 배경으로한 로마시내의 모습
▲ 콜롯세움의 모습이다. 실제로 시간이 없어 안에는 둘러보지 못했다.
플라비아누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원래는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렸다. 70~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공사를 시작해 80년 티투스 황제 때 100일간의 경기가 포함된 제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헌정되었다. 8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최상층을 덧붙여 공사를 완성했다.
여분의 떠받치는 힘을 더하기 위해 적당한 언덕을 파서 세운 이전의 원형경기장과는 달리 콜로세움은 돌과 콘크리트로 세운 완전한 독립구조물로서 가로, 세로가 각각 190m, 155m에 이르며 5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경기장에서 수천 회에 걸친 검투사 시합과, 맹수들과 인간의 싸움, 모의 해전 같은 대규모 전투장면이 실연되었다. 중세 때에는 낙뢰와 지진으로 손상되었으며 반달족에 의해 더욱 심하게 파손되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었던 좌석과 장식물들은 남아 있지 않다.
(출처: 다음백과사전)
▲ 콜로세움 앞에서 기념촬영
▲ 왼쪽의 학생은 이번 단체여행의 일행중의 한 명이다. 어머님과 언니, 그리고 남동생과 같이 여행을 했다.
늘 건강하기를 빕니다. 사진을 전해줘야 하는데................
▲ 가족끼리 온 학생
▲ 콜로세움의 벽돌을 눈여겨 봤다.
▲ 콜로세움의 벽돌
▲ 콜로세움을 보러온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
▲ 시간이 없어 내부를 구경하지 못하고 입구에서 잠시 안으로 드려다 본다.
▲ 콜롯세움의 전경/이곳에서 옛날 투우사와 검투기 등이 열렸나 보다. 영화에서 많이 본 장면들이 연상된다.
▲ 로마의 소나무이다. 울진금강소나무 보다 윤기와 건강상태가 덜 한 느낌이다. 한국산 소나무 보다 맴시가 덜한 것 같다.
▲ 1.마트에 들려 이것저것 아이쇼핑을 즐겨본다.
2. 마트에 들려 쇼핑을 했다. 빵은 여행중에 먹던 것, 우유와 포도주 한 병 그리고 야참 과자 등
▲ 국내에서의 가격을 비교해 본다. 야채 등 먹거리 부문은 가격이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데 역시 물가는 한국보다 비싸다.
프랑스,스위스, 독일, 이탈이라 여행중에 느낀 것은 이탈리아 남부지방이 그나마 물가가 싸다.
▲ 포도주/ 각기 각색의 포도주/ 이탈리아는 포도주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유럽의 달걀의 품질은 최상급이다.
한국의 최상급 달걀 조차도 유럽의 등급이하 보다 품질이 못한 느낌이었고 스위스에서의 달걀을 한 번 깨서 먹어봤는데
이런 달걀을 어떻게 생산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난 과거에 산 속에서 2년 정도 토종닭을 방목해서 키운 경험이 있는데 달걀 보는 법은 조금 안다.
좋은 달걀은 노른자 색깔이 노란색이 아니라 거의 황토색에 가깝다. 국내에서 어떤 나쁜 놈들은 가끔 착색을 시킨 달걀도 생산하곤 한다.
▲ 고기의 천국./ 기상천외한 양질의 고기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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