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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것들/살아가는 이야기들

삶과 죽음의 공존(共存)

 

 

 


 # 촬영일시: 2016년 4월 17일(일)

 # 촬영장소: 울진 응봉산 덕구계곡 원탕을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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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의 공존(共存)
   

 울진에 있는 응봉산에 올랐다.
 매년 이맘때 산을 오르다 보면 작년 가을, 나뭇가지에서 이별을 고하고 떨어진 낙엽이 진달래가 만개한 봄에도

계곡에 수북히 쌓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생물학적인 측면으로 보면 낙엽은 생명을 다한 무생물이다.
생명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엽록체가 없고 햇볕을 받아도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없는 무생물.
겨울이 지나 새싹이 돋는 자기가 자라온 나뭇가지를 떠나 그 밑에 혹은 그 주위에 썩지않고 제 집을 지키고 있다.

 

작년 가을, 유럽에 갔을 때  여러나라의 공동묘지를 둘러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와는 달리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의 묘지는 사람이 사는 주택 가운데 공동묘지 형태로 존재한다.

이 공동묘지는 사람들이 오고가고 주거하는 주택가 가운데 주로 위치해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혐오시설이라 극구 반대하며 지역 이기주의 형태로 주민들의 의사결정이 나는 것임에 불구하고

유럽에서는 내가 사는 집 가운데 공동묘지가 있어도 별 불만없이 그들의 친척과 친구와 이웃의 주검과 같이 살아가는 모습에

놀랐다.

 

이 지구상에 남녀노소, 직업의 귀천을 떠나 가장 평등한 것은 시간과 죽음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며 죽음 또한 인간인 이상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신이 내린 공평함이다.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누구나 죽는다.

 

내 부모님은 모두 오래전 작고하셨다.

그들의 묘지 또한 내가 사는 집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는, 내가 매일 출퇴근하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작고하신지 십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내 부모님의 죽음이 내 마음 속에 아주 가까이 있다.

내가 아는 이웃의 묘지도 그렇다. 그 이웃의 묘지 또한 내가 그 앞을 지날 때면 그 분의 평소 모습이 생각나고 언젠가는 내게 찾아올 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된다.

 

우리들의 죽음과 생은 공존한다.
육체는 죽어서 한 줌의 재로 변해(화장시) 혹은 한줌의 흙으로 변해 내가 사는 주변의 이웃과 함께 한다.

산을 오르며

작년에 떨어져 아직도 썩지 않는 제살의 나뭇잎과 또는 썩어 거름이 되는 제살의 주검을 먹고 새순을 돋는 나무를 보며
먼훗날 내 살이 썩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지금 내 눈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다.

 

또한 이 모습에서

세상사람들이 저지르는 선(善)과 악(惡)!
나는 그들도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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