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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추천여행지/문화재·전시·미술관

[근남면]격암 남사고(格菴南師古)선생 유적지/조선시대의 예언가

 

 

 


# 격암 남사고(格菴南師古)선생 유적지

 

- 위치: 경북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384
- 문의 :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문화재계 054-789-6920

- 설명 : 격암 남사고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된 유적지이다.
격암의 생가터인 근남면 수곡리 수곡리 누금마을 392번지 외 53필지의 부지 30,035㎡(9,086평, 생가터 11,113㎡ 2블럭 18,922㎡)에 총사업비 3,868,000천원을 들여 공원화하였다.
격암정사 목조한식기와 64.80㎡(19.6평), 목조한식기와, 35.10㎡(10.6평), 목조한식기와, 18.81㎡(5.7평) 와 사주문 1개소(1.36평), 협문 3개소를 지어 주요 건물외부에는 토석담장과 석축을 설치하고, 전기공사 주물 외등 10개소, 잔디 등 20개의 조경물을 설치했다.

이외 화장실, 팔각정자 1개소, 초정 2개소, 사각파고라 4개소, 평의 자 22개소, 홍살문 1개소, 정자, 파고라, 물레방아 1개소, 솟대 2개소, 그네 1개소, 종합안내판 2개소, 연못 1개소, 음수대 2개소를 설치하여 관광객들의 불편함을 해소했다. 또 2,441㎡에 FC황토포장을 하고, 891㎡에 점토벽돌포장을 하여 대형버스 11대, 소형 65대 자동차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을 마련하고,
공원등 23개를 설치하는 등의 조경공사를 하여 부지 전체를 공원 관광지화 했다.

 

- 격암 남사고 선생에 대하여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격암(格菴). 만호(萬戶) 남호(南顥)의 증손이다.


[활동사항]
남사고는 천품이 재주 있고 사리에 밝아 경사(經史)에 능통하였다.
항상 『소학』을 책상에 두었고 특히 역학, 천문, 지리에 정통하여 기(氣)의 묘를 능수능란하게 관찰하였다.
봉래 양사언(楊士彦)이 『주역(周易)』을 논하다가 남사고를 스승으로 모셨는데 남사고의 깊은 말을 조정에 올리기를 “조정에 멀지 않아 동서분당론(東西分黨論)이 일어나 국가의 근심이 막심하리라” 하였고, 서쪽 하늘을 향하여 네 번 절하고 말하기를
“명나라의 천자가 죽는다”고 하였다.

또한 한참 동안 경건한 마음으로 묵례하니 화창한 날에 사직동(社稷洞)에 기가 서려 있음을 보고 성인이 태어난다고 하여 국가의 경사가 있음을 예측하더니 후에 덕흥군(德興君)이 탄생하였다. 또 소백산에 올라가 동남쪽에 왕성한 기를 바라보고 진·사(辰·巳) 양년에 임금이 피난 가는 큰 난리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또한 『천자문』에 주를 달아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었고, 선조 초에 천문교수로 재직할 때 오래되지 않아 태사성(太史星)이 어두워짐에 관상감정(觀象監正) 이번신(李藩臣)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자 남사고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당할 자가 자기라고 하더니 그 후 남사고가 죽었다.


[저술 및 작품]
「완역도(玩易圖)」를 제작하여 이치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황왕포(皇王鋪) 서문」과 「설월품제(雪月品題)」 등을 지었다. 1994년 「해옥첨주부(海屋添籌附)」와 『격암유집(格菴遺集)』이 현대문으로 번역되었다.

 

※자료는 '울진디지털 문화대전'을 참고한 자료임을 밝혀둡니다.

홈페이지 : http://uljin.grandculture.net/

 

 

 

 

 


-방문일시 : 2015년 4월 11일(토)

격암 남사고(格菴南師古)선생 유적지 !

울진에 살면서 많이 들어온 유적지이다. 가끔 유적지 부근에 일이 있어 갈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곳이 이곳이다.
넓은 면적에 유적지라고 꾸며 두었는데 둘러보면 남사고 선생에 관한 자료가 별로 없는 곳이 이곳이다.
남사고 선생유적지는 2005년 6월, 지금으로 부터 10년전 남사고 선생의 탄생지인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일대를 경북 북부
유교문화권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총 사업비 45억원의 예산을 들여 건립한 것으로 안다.

 

 그 당시 경상북도 예산과 군예산 등이 투입된 이 공사는 사업비에 걸맞게 방대하게 건립된 것은 사실이다.
 도에서 예산이 책정되어 울진군에 배정을 하니 마땅한 유교문화에 관련된 사업이 없었던 모양이다.
 건립을 위한 사전 타당성과 자료 등이 충분한지의 검토도 없이 덜컹 예산을 받아놓고 사업을 진행했던 모양이다.
 현재도 국내의 많은 지자체에서 효율성이 없고 예산낭비성의 사업에 국,도,시,군비를 투자해 국민들의 원성을 사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이 남사고 선생의 유적비도 같은 유형에 속해있다.
 자자체의 장(長) 들이 충분한 검토없이 선거용 혹은 주민 선심용 등으로 막가네 공사를 진행한 탓도 있겠고
 예산이 배정이 되니 버리기는 아깝고 마땅한 소재거리도 없었겠고...
 그래서 급조를 한 것이 남사고 선생 유적지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공사의 입안시 남사고 선생에 관한 자료가 있는지 유적지를 만들어 놓고 과연 어떤 자료들로 채워져야 할 것인지
의 밑그림과 타당성을 전혀 고려치 않았는 것 같다.


 지난 2015년 4월, 그 동네 볼 일이 있어 다녀오던 길에 잠시 들렸다.
 유적지라 해서 실내에는 남사고 선생과 관련된 유품, 자료 등이 한 점이 없으며 그냥 집만 횅하니 몇 채 지어져 있었으며
 관광객들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 한 명 없는 유적지로 변해 있었다. 
 만들어진지 벌써 수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유적지에 채워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남사고 선생에 대한 안내판 정도.

 하루빨리 유적지의 활용도를 높일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다른 용도로 사용하든지...
 
 

 

 

 

 

격암남사고 선생 유적지로 들어가는 길은 '성류굴' 들어가는 북쪽 입구로 들어가면 된다.
이길은 봄철에 벚꽃 길이기도 하고 우측으로는 왕피천이 도도히 흐른다. 성류굴 쪽으로 가면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를 건너
'울진군종합운동장' 앞으로 쭉~ 들어가면 된다.

 

 

 

 

 

 

 

 

남사고 선생 유적지의 정문이다.

 

 

 

 

 

 

 

 

 

격암 남사고 선생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해두었다.

 

 

 

 

 

 

 

 

 

 

서원과 내부 모습

 

 

 

 

 

 

 

 

들어가면서 정면에는 서재인 자동서원, 강당인 수남정사 등이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구조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구조와 서원의 배치 등은 남사고 선생이 살아생전 때의 모습들의 구조였는지... 모르겠네^^

 

 

 

 

 

 

 

 

남사고 선생에 대한 각종 안내판이다.

 

 

 

 

 

 

 

 

 

남사고 선생에 관한 안내판

 

 

 

 

 

 

 

 

 

 

 

 

 

 

 

 

 

 

 

 

 

 

 

 

 

 

 

 

치격사 (致格祠): 위패를 모신 곳 

 

 

 

 

 

 



 

수남정사(水南精舍): 강당을 말한다.

 

 

 

 

 

 

 

 

 

자동서원(紫洞書院) : 서재를 말함

 

 

 

 

 

 

 

 

 

 

자동서원(서재)의 측면 모습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생가이다.

 

 

 

 

 

 

 

 

 

 

생가의 내부

 

 

 

 

 

 

 

 

 

 

 

 

 

 

 

 

 

 

 

 

 

 

 

 

 

 

 

 

 

 

 

▲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남사고 선생의 묘소/ 수 년 울진군향토사연구회원들의 향토유적지 방문때 촬영한 사진이다. 가운데 서 계신 분이 윤대웅 현 울진문화원장이다.

 

 

 

 

 

 

 

 

 

 

격암 남사고 선생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