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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외씨버선길

외씨버선길 9길.1 (춘양목 솔향기길)/춘양면사무소-두내약수탕/20Km






 

  

 

     #외씨버선길 9길.1 (춘양목 솔향기길)/춘양면사무소-두내약수탕/20Km
   - 탐방일자: 2018년 10월 7일(일)

    - 탐방자: 알비노 단독












  #'억지 춘양이라는 억지'

   춘양면은 경북에서도 내륙지역에 속한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여름대로 더울 때가 있고 시원할 때도 있다.
   춘양면은 내게 늘 시골마을로 인식이 되어 있다. 내가 사는 울진도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에서 보면 오지겠지만
   유달리 춘양면이 시골마을로 인식이 되어 있는 까닭은 어릴적 서울갈 때 시골마을 인상이 남아 있어 그런 것 같다.

   '억지 춘양'이라는 말은 자주 들었는데 그 유래를 몰랐다. 
   옛날 울진지역에 많이 자란 울진금강송을 실어나르기 위해 철도를 개설하던 중 억지로 철로의 노선(영동선)을 춘양읍 소재지로
   공사를 변경시켜서 진행하게 해서 '억지 춘양' 이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부모님이 말리는 일들을 억지부려 한 일들이 꽤나 있다. 
   형님 등록금을 전달하라는 부모님 몰래 배달사고를 쳤다. 난 그 돈으로 그 당시 누구나 갖고 싶었던 소니 녹음기를 샀다.
   지금은 작고하신 아버님께 야단도 꽤나 맞았다.
 
   기존 계획을 바꾸면서 까지 억지부려 철도 노선을 변경하신 분의 고향사랑을 짐작해 본다.
   내가 형님의 등록금을 억지부려 내 용도로 사용한 것은 타당성에 맞지 않는 억지이고
   순수한 마음에서 대의적인 마음으로 철도 노선을 변경한 분의 억지는 어쩐지 밉지않다.

   그런 억지 춘양면에서의 외씨버선길 시각을 면사무소에서 시작을 했다. 
   면사무소에서 출발, 버스 터미널을 지나 시장을 지난다. 춘양의 전통시장의 아침 모습은 울진읍의 전통시장이나 별반 
   다른 것이 없다.
   사람이 없다. 시장에 사람이 없는 것은 경북 북부지역의 모습 소도읍이 동일하다.  장날에는 그나마 사람들이 분비지만 평일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 지역의 경제활동과 인구문제와 직결된다.

   농촌, 산촌, 어촌마을의 인구수가 자꾸 줄고 경제활동을 할 젊은이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춘양면 시내의 풍경은 어쩐지 내 눈에 익숙하다. 내가 사는 울진과 사람사는 모습이 비슷한 까닭이 아닐까?



   # 잘 가꾸어진 권진사댁    
   
여기를 들리기 전에는 춘양면 소재의 권진사댁을 알지 못했다.

      길을 걷다 잘 가꾸어진 한옥이 보인다.
      활짝 열려진 대문으로 넓은 마당이 보이고 한옥의 규모로 봐서 주인은 옛날에 꽤나 큰 벼슬을 한 분이에 틀림이 없다.
      마당 안으로 들어가 한옥의 구조를 훑어본다.
      그 당시에 유용했던 건물의 구조를 통해 그 당시의 삶을 엿본다.

      안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부부가 살고 계셨다. 양해를 구하고 집안 구석구석 둘러본다.

      집의 규모로 봐서는 두 부부가 관리하게 벅찬듯 했다.     

 

      권진사댁은 성암 권철연(18741951)이 살던 집으로 건너마을 운곡에 살던 그의 아버지가 1880년경 이곳에 지은 건물이다.
     
선생은 조선 고종 17(1880)에 사마시에 합격해서 생원이 되었으며
      이후,
문인명사와 애국지사들이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사마시 []는 조선시대 생원과 진사 뽑던 과거이며 생원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을 일컷는 말이다.  



춘양면 사무소 전경

마당에 주차후 발걸음을 옮긴다.















한국천하명당 십승지 춘양/ 이곳이 춘양구곡 중에 팔곡인 모양이다.


한국천하명당 십승지에 대해

송하비결, 격암유록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예언서의 하나인 정감록에는 전쟁이 일어나도
굶주림과 재앙이 없이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10곳이 십승지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현대에도 안전지역을 넘어 지리적으로 가장 완벽한 친환경 농산물 생산 입지지역이며 풍수지리적으로도
잘 보존된 청정지역이다
.

이한응의 춘양구곡시

춘양구곡가(春陽九曲歌)는 경암(敬菴) 이한응(李漢膺)이 지은 구곡가이다.

경암은 자는 중모(仲模)이고 호는 경암(敬菴)이며 본관은 진보(眞寶)로 경북 안동(安東) 출신이며 이진굉(李鎭紘)의 아들이다.
그는 과거에 관심을 두지 않고 궁리진성(窮理盡性)에 뜻을 두어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1849(헌종 15) 천거를 받아 가감역(假監役)을 지내고 1857(철종 8)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으며
1860년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에 이르렀다.

경암 이한응은 평생 후진 양성에 뜻을 두어 이만준(李晩埈) 등의 문인을 두었으며 또한 저술에 전념하여 주자(朱子), 장식(張軾),여조겸(呂祖謙)과 이황(李滉)의 저서 중에서 622조의 글을 뽑아 14권의 속근사록(續近思錄) 을 만들었다.

그는 주로 이황의 학설을 따랐다.경암 이한응은 봉화군 춘양면에 춘양구곡을 경영하였는데 춘양은 신령한 골짜기와 맑은 시내를 가졌다. 춘양의 물은 태백산 서남 두 계곡으로부터 흘러오다가 남류로 합하여 낙강(洛江)으로 들어가서 수백리를 흐른다.

태백산은 신령하고 빼어나며 방박한데 춘양이 그 중심에 처함으로써 그윽하고 깊을 뿐만 아니라 시내가 흐르면서 가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 때문에 경암은 적연(笛淵)으로부터 도연(道淵)까지 구곡을 설정하고 춘양구곡가를 지었다.

 

춘양구곡은,
1
곡 어은(漁隱), 2곡 사미정(四未亭), 3곡 풍대(風臺), 4곡 연지(硯池), 5곡 창애(滄崖), 6곡 쌍호(雙湖), 7곡 서담(書潭),
8
곡 한수정(寒水亭), 9곡 도연서원(道淵書院)으로 명명되어 있다
(출처: 청주정씨 대동회 http://cafe.daum.net/CHEONGJU)

 

 

 

太白鎭南淑且靈 (태백산 남쪽은 맑고 신령하니)

태백진남숙차령

發源寧不潔而淸 (발원지 물이 어찌 청결하지 않으리오)

발원영불결이청

春陽平野逶迤去 (춘양 땅 들판으로 구불구불 흘러가서)

춘양평야위이거

曲曲成區世有聲 (구비구비 마을마다 뱃노래 들려오네)

곡곡성구세유성   

 

八曲寒亭際野開 (팔곡이라 한수정가 넓은 들판이 열리고)

팔곡한정제야개

仙臺超忽俯澄洄 (신선대 우뚝 솟아 맑은 물 내려보네)
선대초홀부징회

遊人莫歎遺芳遠 (나그네야 선경이 없어졌다 한탄 말게나)

유인막탄유방원

秋月潭心夜夜來 (가을달은 못 가운데 밤마다 오는 것을)

추월담심야야래 












춘양시장을 지난다. / 울진의 전통시장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다.

















눈에 익숙한 골목길이 나온다.

이런 길을 기나 막걸리를 파는 대폿집에 자주 간 기억이 새롭다.


















' 자야네 국수 전문점'

도시의 어느 고급 레스토랑 보다 더 정감이 가는 풍경이다.
가게 주인의 일상사에 머리속에 그려진다. 시장보고 안주 준비하고,,,그리고 손님을 받겠지.
세상의 시름을 막걸리 한 잔과 파전에 녹이며 하루를 보내는 손님들의 모습까지 눈에 그려진다.
울진에 있으면 나의 단골집이 되겠지. 난 국수도 좋아하니 더욱 좋은 일이고.















가을이라 길가로는 단풍이 계절을 알리고 있다.



















봉화성당 앞을 그냥 지나기가 뭐해 잠시 안으로 들어가 본다.
갈길이 멀어 먼발치에서 사진 몇 컷으로 대신한다.

















주임신부님이 지역에 관해 많이 공부하신 모양이다.
신부님들도 정기적으로 이동해야 하기에 한 지방에 대해 인문학 강의하기에는 어지간해서 힘드실 것 같은데 열정이
대단하신 신부님이다.
춘양성당 주임신부 김요한 신부님 이야기다. 성함이 요한이고 세례명도 요한이다.





















성암 권철연 선생의 고택

















고택 전경

한 부북가 집관리를 하시는 것 같은데 관리하시기에 힘들 것 같은 규모다.



































양해를 구하고 집안 뒤편을 가본다.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


































집 안쪽이 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집 안에 또 다른 마당이 있다.


































고택의 유지비용이 작은듯 했다.
군데군데 훼손된 부문도 많다.
































집안에 유실수도 있다. 모과나무


















외국인들이 한옥 가운데서도 관심이 많다는 문살

















대통령 노무현으로 부터 표창장을 받았는 모양이다.

















이 한자가 뭔지 잘 몰랐다.

범호(虎)라고 한다.














대문에 걸린 범과 용

















좌) 한국산림과학 고등학교
우) 장비들이 뭐가 있는지 드려다 본다. 고등학생들이 취급하기에 힘든 장비도 있다.












군데군데 호박을 다량으로 갈아 놓았는데 익은 호박을 다량으로 파는 모양이다.
그런데 올해는 날씨 때문인지 추수에 실패했다.

















바위에 글을 새겨놓았다.
















이곳이 '태고촌'이라는 말인듯 하다.

이름을 남기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산길과 마을길을 번갈아 걸어간다. 적적한 느낌이 든다.
















양반 걸음걸이 체험 구간이다. 발을 맞춰 걸어보니 양 다리의 폭이 너무 넓다.
내 키가 큰편인데도 넓게 느껴지는데 키가 작은 사람들은 사타구니에 상당한 무리가 따를 것 같다.

















길가의 코스모스

















인삼밭인데 한 여름의 태풍에 비닐이 전부 망가졌다.



















관상용 사과/ 이런 것도 있었는가? 하는 생각













































사과밭이 많다.
















천남성 열매

옛날 사약의 원료입니다. 절대 먹으면 안됩니다. 열매색깔이 징그럽게 보인다.

















허리를 굽혀 밤을 줍는다.  주머니에 넣고 걸으며 까먹으니 그것도 재미있다.






























농로길을 한참 걷는다.
















때론 한적하고 아늑한 길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