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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것들/살아가는 이야기들

어느 밧줄이 남긴 이야기

 

어느 밧줄이 남긴 이야기

                                                                         - 글작성 : 최종은/알비노

                                                                         - 글쓴날짜: 2011년 9월 20일(화)

 

 

2011년 8월 7일, 울진군 북면 덕구에 위치한 응봉산 정상에서 강원도 삼척시 덕풍마을 방향으로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덕풍계곡으로 산행을 갔을 때의 일 이다.
 

응봉산 정상은 여러번 다녀왔지만, 덕풍계곡은 내 귀엔 그렇게 익숙지 않았고 사실 등산을 시작하기 전 에는

덕풍계곡 뿐만 아니라 등산 애호가들이 즐겨쓰는 모든  말들이 생소했었다.

등산을 하는 것이 그냥 동네산을 오르는 정도로 생각했던 나 에게는 덕풍계곡을 갈 때쯤 산이 어떻다는 것을 조금은 알

정도가 되었다.

[산길찾사 ]회원들과 여러번 장거리,  단거리 산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산에 대한 상식도 알게 되었고

쉽게는 배낭 구입하는 방법과 겨울철 산행의 필수장비인 아이젠의 사용법등 차츰 등산에 관해 익숙해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산행시 위험스런 구간에서는 자신이 없을 때가 많다.
 

이날도 그렇게 평소 하던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에 나섰다.

응봉산 정상을 올라 덕풍계곡으로 내려서서 계곡과 산을 번갈아 가며 트레킹을 계속했다.

덕풍계곡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한 구간이다.

군데군데 절벽이 도사리고 있어 산행의 집중도가 요구되며 비가 오는 날 이면 미끄러져 계곡으로 떨어져 심한 부상을
입을
정도의 위험한 구간도 있었다.

일행들은 앞서가고 난 초보산행꾼인 관계로 뒤에서 느린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어느 구간을 지나는데 잡자기 앞이 깜깜해 지는 것이 아닌가?

절벽이다. 사람 한 명 겨우지나갈 수 있는 좁은 절벽길. " 먼저간 사람들은 어떻게 갔을까? "

순간적으로 나는 위를 쳐다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손가락 만한 밧줄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삼척시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설치를 했다면 이 보다 더 굵은 밧줄을 설치해 두었을터 인데 아주
가는 밧줄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 계곡을 산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손수 위험을 무릎쓰며 나뭇가지에 밧줄을 걸쳐 놓았던 것 이다.

다행히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나는 그 밧줄에 몸을 의지해 위험구간을 건너 올수 있었다.

아버님 작고 하시고 그 뒤 4년쯤 더 지난 뒤 어머님 마저 저 세상에 가셨다.

어머님 작고 하신지 어느듯 8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나는 말년의 어머님이 외출을 가실때쯤

나의 점심은 늘 부엌 한 켠에 보자기로 덮어진 밥상에 얹어져 있었다.

 

혼자의 몸도 가누기 힘든 여든 노모가 차려놓은 점심의 밥상엔 오밀조밀 밑 반찬과 된장찌게,
김치등이 얹어져 있었으며

가지수도 많지 않은데 왜 그렇게 밥 맛이 좋은지 그 어머님이 가끔 생각난다.

내가 가더라도 밥 만은 굶지 말고 챙겨 먹어라는 그 마음.
 

가을의 초입에 서 있다.

아침으로 밤 으로 부모님 산소앞을 출퇴근하며 특히 어머님이 차려주신 그 밥상을 생각해 본다.

 

이름도 남기지 않고 뒤에 오는 사람과 나중의 사람을 위해 위험구간에 밧줄을 걸어둔 그 분의 마음이나

외출을 하면서 자식 밥상이 걱정되어
 몇 가지 되지 않는 반찬과 함께 밥상을 차려놓은 여든이 넘으신

내 어머님의 마음이나 두 분 중 한 분의 마음 이라도 닮고 싶지만,

난 오늘도 나 만의 그릇에 내 혼자 욕심스럽게 먹을 것들을 챙겨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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