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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것들/살아가는 이야기들

숨겨진 희생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마을펜션 상량식때
-촬영일시: 2017년 7월 19일(수)


상량식(上樑式): 목조 건물의 골재가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대들보 위에 대공을 세운 후에 최상부 부재인 마룻대(상량)를 올리고
거기에 공사와 관련된 기록과 축원문이 적힌 상량문을 봉안하는 의식이다.
본래 목조 건축과 관련된 의식이지만 현대에도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철골 공사의 마지막 부재를 올리는 의식을 지칭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전곡리 : 울진군의 오지마을로서 봉화군과 울진군의 경계면에 위치해 있으며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전천동(前川洞)과 원곡동(元谷洞)에서 ‘전(前)’자와 ‘곡(谷)’자를 따 ‘전곡(前谷)’이 되었으며
풍광이 뛰어난 마을이기도 하다.


 
# 숨겨진 희생

 

살면서 우리들에게 가장 고맙고 없어서는 안 될 것 중의 하나이며 꼭 필요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매일 우리들이 숨 쉬고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공기, 체력을 지탱해 주는 물이 그것이다.
공기와 물이 없으면 몇 분 아니면 며칠 내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하고 인간의 삶에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며 매일 접하는 나의 생명과 직결되는 공기와 물의 고마움을
잊고 산다.

 
그들을 경제적인 가치로 따지면 일 년 생활비를 몽땅 털어 넣어도 모자랄 그런 가치를 지녔음에도
그들은 불평 불만없이 늘 우리들 곁에 있으며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에 울진군의 오지마을인 금강송면 전곡리 마을 펜션 기공식의 상량식에 참석했다가
집 골격이 되는 나무에 걸터앉았다가 문뜩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주춧돌!

일반 가정주택 건축시,  집 기둥 밑에 박혀 일평생 말없이 집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주춧돌이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밖에 있는 주춧돌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만 집 안에 들어가는 주춧돌은 그 집의 수명보다 훨씬 오래간다.
최소한 수 십 년 동안 남 모르는 곳에서 나와 가족을 위해 말없이 희생을 감수한다.

말을 못하는 돌에 불과하지만 상량식 행사 내내 주춧돌의 감춰진 희생과 우리들의 삶 중에 말없이 묵묵히 자신의 삶을
태워 타인의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진다.

 

가끔 기부단체나 종교단체 등에서 기부금을 거둘 때 익명으로 후원하는 사람들을 본다.

아니면 기부를 했다고, 어려운 일을 했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이웃 간, 친구 간, 형제간에 당연히 해야 할 희생도 내 입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으로 둔갑해 전달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십 수년 전, 술로 인해 고생할 때 지금은 작고하신 부친은 일흔이 넘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응급차를 불러
병원에 입원시켜 나의 건강을 회복시킨 적이 있으며 혹 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지
어느 누구에게도 자식에 대한
희생을 자랑하지 않으셨다.

단지 면회시 회복에 대한 격려와 용기를 잃지 말 것을 채근하셨다.

작고하신 지 십 수년! 작고하신 부친의 말없는 희생과 주춧돌이 대비되어 희생의 참의미를 깨달으며
내가 지구 상에 머무는 시간보다 수 천배나 많은 세월동안 지구 상에 머무는 단지 말 못 하는 돌에 불과할지라도
일평생 내가 사는 집의 남모르는 곳에서 나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주춧돌에서 나는 나를 다시 드려다 본다.

'희생 양극법'이라는 말을 얼마 전에 들은 적이 있다.

철로 만든 배를 건조할 때 배 밑, 철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아연을 덧칠한다고 한다.

철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아연을 덧칠함으로 아연은 배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철 대신 부식된다고 한다.
이것이 '희생 양극법'이다.

현실은 어떨까?

남의 눈에 띄지 않으며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음지에서 내가 매일 자는 집을 지탱해 주는 주춧돌의 역할 보다는
양지에 나서기 좋아하며
선한 일을 소문내기도 좋아하고 남의 살림살이와 비교해 남편에게 희생보다는 부담을,
부인에게, 자식에게, 부모에게, 이웃에게 희생보다는 마음의 짐을 주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나 역시 수 십년의 세월동안 주춧돌이 되는 역할을 과연 몇 번 했을까?
하지만  때론 버려진 돌이 주춧돌이 될 때가 있는 것과 같이,  나 역시 언젠가  누가봐도 아름답고 소박한 집의 주춧돌
역할을 할 때가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