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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트레킹/국내여행

[서울]비극의 인물 연산군의 묘와 수령 900여년 방학동 은행나무, 그리고 원당공원과 샘

1. 김수영 문학관
2. 문학관의 전경

 

 

 

 


# 김수영 문학관


- 주 소 : 서울시 도봉구 해등로 32길 80
- 전 화: 02-2091-5673

- 홈페이지 : http://kimsuyoung.dobong.go.kr/ 

- 문학관 소개

  한국문학의 대표적 자유시인인 김수영 시인이 생전에 시작(詩作) 생활을 하였던 도봉구에는 그의 본가와 묘, 시비가 있다.
  이에 김수영 시인을 기림과 아울러 6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흐르는 원당샘 공원, 연산군과 정의공주 묘,
  그리고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길과 더불어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을 제공하고자 도봉구에서 
  김수영문학관을 건립하여 2013년 11월 27일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 연산군 묘

 

- 주 소 : 서울 도봉구 방학동 산 77
- 전 화: 02-3494-0370 ( 연산군 묘의 관리소/ 관리소에 관리인이 상주를 한다.) 

 

 

조선 제10대 연산군(1495∼1506 재위)과 거창군부인 신씨(居昌郡 夫人愼氏)(1476 ∼ 1537)의 무덤이다.
중종 8년
1513년에 조성되어,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왕 또는 왕비의 무덤을 능(陵)이라고 하지만 연산군은 그 지위가 군(君)으로 강봉되었기 때문에 묘(墓)라 하였다.
그 후 중종 7년(1512) 12월 부인 신씨가 상소하여 묘를 강화에서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선영(先塋)이며 연산군의 사위와 딸의 무덤이 있는 양주군 해등면 원당리(현 도봉구 방학동)로 이장하기를 청하여,
이듬해(1513) 2월 왕자군(王子君)의 예(禮)로 이장하고 양주군의 관원으로 하여금 제사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묘의 시설은 대군(大君)의 예우로 장례하여 무덤, 곡장(曲墻), 묘비(墓碑) 1쌍, 혼유석(魂遊石) 1쌍, 망주석(望柱石) 1쌍, 장명등(長明燈) 1쌍, 향로석(香爐石) 1좌, 재실(齋室)은 갖추어져 있으나, 병풍석(屛風石), 석양(石羊), 석마(石馬), 사초지(莎草地),
문인석(文人石) 등은 세우지 아니하였다.

연산군의 묘비 앞면에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무덤이 만들어진 연월인 '정덕팔년이월이십일장(正德八年二月 二十日葬)'이라 새겨져 있다.

 

 

# 방학동 900년 은행나무

 

 서울시 지정보호수 제1호로 지정된 방학동 은행나무는 높이 24m, 둘레 9.6m, 수령 830년 된(지정일자 : 1968년 2월 26일)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다.
이 은행나무는 그 모습이 매우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예로 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성시 하였고, 이곳에 불이 날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일년 전에도 불이 나서 소방차가 동원되어 진화했다고 한다.

 

 

# 원당 샘

 

 원당샘은 수 백년 동안 이곳 마을사람의 식수로 이용되었다고 하며 일명 피양우물 이라고 불리어졌다.

이 우물은 풍부한 수량으로 심한 가뭄에도 마름적이 없고 일정한 수온을 유지하여 혹한에도 얼어 붙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주변의 연산군묘 및 은행나무와 연계하여 2011년 자연친화적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 일시: 2015년 2월 19일(목)

- 방문자: 알비노 홀로

 

설날이다.

 

매년 설날이면 장거리 산행을 떠나는데 이 번 설날은 서울에서 보내게 되었다.

친구들 만나고 마침 친지집에 도봉산 아래라서 설날 오후에 도봉산에 올라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는다.

주변에 이곳저곳 마실을 나가본다.

아쉬움 둘

1. 김수영 문학관이 연휴로 인해 문이 닫겨있어 둘러보지 못한 점

2. 도봉산 산행을 시간이 부족해 하지 못한 점

 

 


 

 

김수영 문학관 앞 도로변의 관련 디자인

벽 디자인이 특이하다. '파밭 가에서'의 한 소절을 옮겨 적어두었다.

벽면 디자인의 단점은 처음에는 멋있고 보기에는 좋으니 시간이 갈수록 퇴색과 망가진 다는 것이다.

 

아래는 ' 파밭 가에서'의 전문

 

파밭 가에서   - 김수영-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서울시 도봉구 출신의 현대사 인물들을 소개해 두었다.

눈에 익는 분들도 몇 분 있다.

 

 

 

 

 

 

 

김수영씨의 대표적인 시는 역시 ' 풀'이다.
민중시로 알려진 시 이기도 하고 ' 풀' 이라는 시는 늘 읽어봐도 부담없이 피부에 와 닿는다.
지독한 생명력으로 잘 죽지않는 풀!
그 풀로서 일반 서민들의 삶을 은유해둔듯 하다.

사진에 나온 링닝구 입은 사진은 김수영씨의 대표적인 사진같다. 늘 책과 시집 그리고 가끔 나오는 언론지 등엔 이 사진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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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수 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더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곳에는 연산군 묘지와 9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의 장수비결은 이 부근에 마르지 않는 양질의 우물을 이유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1.연산군 묘소의 입구 / 관리소에 사람이 상주한다.

2. 왼쪽이 연산군 묘이고 오른쪽이 부인의 묘지이다. 단촐하게 비석만이 남아 있다. 제대로 왕정을 폈으면 무덤 또한 더 화려하지 않았나 싶다.

 

 

 

 

 

연산군 묘의 상설도

 

 

 

 

 

맨 위가 연산군과 부인 신씨묘가 있고

그 아래로 둘째 부인인 의정궁주 조씨묘가 있다.

그리고 맨 아래에 연산군 사위 구문경과 딸의 묘의 순서로...

 

 

 

 

 

묘 앞으로는 아파트가 보인다.

 

 

 

 

연산군 묘 앞의 비석

문이 닫겨 있어 가까이 들어서 비문을 읽어보지 못했다.

 

 

 

 

 

부인의 비석이 미관상 더 오래된듯 했다. 부인의 비석의 마모도가 아주 심하다.

 

 

 

 

 

옆에서 한 번 본다.

 

 

 

 

 

연산군 묘에 대한 설명

 

 

 

 

 

연산군 묘에서 도봉산 둘레길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재실이 있다.

재실은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인 영과 참봉이 근무하는 곳이며 제향 시에는 재관들이 머물면서 제향을 준비하는 곳으로 안향청,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다.

 

 

 

 

 

 

연산군 재실/ 문은 닫겨져 있었고 매년 여기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대문이 닫겨 있어 담장 너머로 얼굴을 집어넣어 본다.

 

 

 

 

원당 공원의 모습이다.
도심에 공원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겨울이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1. 원당샘에 관한 이야기

2. 원당샘/ 나도 물 한 잔을 마셔 봤는데 물맛이 괜찮은듯 하다.

 

 

 

 

900여년이 다되어가는 은행나무
나무 앞에 서 봤는데 정말 대단한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은행나무의 둘레가 수 백년된 울진금강소나무 보다 더 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