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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것들/살아가는 이야기들

매일 하면서도 잊고 사는 것들

 

 

# 매일 하면서도 잊고 사는 것들

 

약 2년 전, 같이 살던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혼자 사는 까닭에 매일 밥을 해 먹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2년여를 혼자 밥을 해먹고 일을 다니니 어떨 땐 밥을 하지 않고
쌀 그대로를 먹고 배가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올 봄에 눈이 많이 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읍사무소 컴퓨터 강사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고는 다른 일에 신경을 쓰다 반찬을 준비해 밥상을 차리고 난 후, 밥솥의 뚜껑을 열었다.
맙소사, 분명히 밥통의 스위치를 눌러둔 것으로 알았는데 스위치를 작동 시키지 않은 것이 아닌가!

우리의 일상사에서 이와 같은 낭패를 볼 때가 가끔은 있을 것이다.
분명, 보일러 기름이 1드럼 정도 있었는데, 기름통을 드려다 보니 텅 비워 있었던 일,
냉장고를 사고 잔금을 지불 하려고 보관하고 있던 돈을 내가 쓰고도 잊어버린 일 등....

최근 들어 하루의 일과 중에 내가 분명 했다고 기억은 되는데 그렇지 않은 일이 또 있다.
수도꼭지다.
올 봄에 시작한 약 200여 마리 양계의 식수를 위해 수도꼭지를 틀고 자리를 뜨고 나면 동네 이장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 닭장이 물바다가 되었다는 이야기 이다.
아직도 내가 사는 명도리 2구는 동네에서 자체적으로 우물을 파서, 물탱크를 만들어 8가구의 식수를 해결하는 마당에
물이 귀 할 때는 이것 또한 참 으로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는 울진의 명도 2리에도 가을이 찾아 왔다.
집 앞으로 펼쳐지는 산 중턱에 여름 내내 기풍을 자랑하던 나뭇잎도 노랗게 혹은 빨갛게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이 좋은 계절, 방문을 열어놓고 그림 같은 풍경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올 봄 한식날 부모님 산소 주변에 심어둔 화초나무가 생각이 난다.
 심을 때 잘 가꾸어둔 그 나무들이 물론 잘 피었을 것으로 알지만, 나는 내년 봄 다시 그 화초나무들에 거름을 주고
겉가지를 치고 다시 손질할까 한다.

살아가면서 분명 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을 다시 확인 하는 일.

어쩌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아닐까도 싶다.

나는 가을을 맞아 그동안 잊고 지내온 가까운 친지와 친구에게 편지 한 통 보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것도 이메일이 흔한 요즘, 종이 편지지에다 연필로서....

이 좋은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아 친지와 친구에게 편지 한통 보내는 일과 전화 한 통 해보는 일 또한 서로의 정을 두텁게
하는 일이 아닌가도 싶다.

얼마 후면 겨울이 오고, 또 한 겨울 야밤에 밥해먹을 일이 있어
전기밥솥의 스위치를 누를 일이 있으면 나는 몇 번이고 그 스위치를 점검 할 것 이다.
왜냐하면 밥을 굶어서 까지 일에 몰두 하면서 인생을 살고 싶지 않고, 그리고 내가 분명 했다고 생각이 드는 일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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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2005년 8월 ~ 2011년 9월까지 '울진성당 주보'의 [세상사는 이야기]와 '가톨릭 안동교구 공소주보'의
살림터의 장기필자로서 기고한 글 입니다.
좋은 글은 아니지만, 그냥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이 아쉬워 블로그에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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