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동팔경의 월송정(2014년 3월의 풍경)
▲ 월송정의 전경/ 이 방향은 입구에서 들어가는 방향의 전경이며 바닷가에서 보는 전경과 또 다른 멋을 풍긴다.
- 주 소 :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로 517
- 문 의 :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전화 : 054-789-6901)
- 교통편 : 울진에서 남행, 포항에서 북행 7번국도--> 평해읍 부근--> 월송정 교차로에서 월송정 방면으로 진입
- 주변의 볼거리 : 기성 대풍헌등 둘러보기
- 식당안내 : 홍가네 맛집(전화 :054-787-2205), 부성숯불갈비(전화 :054-787-8885)
- 둘러보기 팁 : 황씨 시조제단원 둘러보기-->입구에서 주차--> 월송정 정자까지 걸어가며 심호흡과 명상--> 정자 둘러보기-->
바닷가에 나가 동해 바라보기--> 낚시터 둘러보기 --> 왔던 길로 다시 가지말고 둘레길을 걸어서 주차장까지 이동
(약 1시간 30분 정도/ 긴거리는 아니지만 흙길을 걸으며 좌측 혹은 우측으로 소나무향을 맡으며 걸을 수 있는 힐링코스)
- 사진촬영 일자: 2014년 3월 19일(수), 14시~
- 촬영장소 :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주변
- 촬영장비: 카메라/캐논 5D-Mark2, 렌즈/캐논 27-300mmL 와 탐론17-35mm
울진군 평해읍에 위치한 '월송정' !
내가 사는 울진읍과는 거리가 있어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들리는 곳이다.
입구에서 월송정 주변으로 펼쳐지는 잘 가꾼 소나무가 장관이며 사람이 분비지 않는 한가한 시간에 혼자서 들리면 동해의 파도소리와 함께 피곤한 심신을 달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주변에 볼거리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정중동(靜中動)'의 생활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번 찾아보면 좋은 곳이다.
특히 입구에 있는 ' 황씨시조제단원'에 들려서 ' 주변의 풍경과 제단등을 함께 둘러보면 더 좋은 여행이 되겠다.
월송정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에는 '정월대보름 축제'가 열리기도 하며 바닷가에서 형성된 작은 호수에는 평소 민물낚시꾼들이
즐겨찾기도 한다.
# 월송정에 관한 설명
(아래의 자료는 디지털울진문화대전 http://uljin.grandculture.net의 자료를 참고했으며 더 자세한 자료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된다.)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에 있는 고려시대 정자.
[위치]
월송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송림에 자리 잡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동해시에 이르면 국도 7호선과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국도 7호선을 타고 달려 동해시를 벗어나 삼척시를 지나면 울진으로 접어든다.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진을 벗어나 영덕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도로 건너편에 월송정 입구가 있다.
[변천]
1326년(충숙왕 13) 존무사(存撫使) 박숙(朴淑)이 처음으로 지었다. 충선왕 때 안축(安軸)의 기문에 “정자를 여기에 지으면 그 운치가 한송(寒松)·월송(越松)의 두 정자와 서로 갑을이 될 것이다”라고 한 기록이 있으며, 1349년(충정왕 1) 이곡(李穀)이 쓴 「동유기(東遊記)」에 의하면 평해군청에서 5리 되는 곳에 이르면 일만 주의 소나무 속의 정자를 월송이라 하고, 이 월송에 사선(四仙)이 놀고 지나갔다 하여 그 이름이 연유된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옛 군지의 기록에 신라 때 영랑(永郞)·술랑(述郞)·남석(南石)·안상(安祥) 등 네 화랑이 달밤에 솔밭에서 놀았다고 하여 월송정이라 하였다 하며, 월국(越國)에서 소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고 하여 월송(越松)이라고 하였다 한다.
월송정은 조선 중기 연산군 때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고,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낡아서 무너지자 1933년 이 고을 사람 황만영(黃萬英)·전자문(全子文) 등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일본군이 강제로 철거하여 터만 남았다. 1969년 울진 출신의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金剛會)의 김정문(金正門)·박선규(朴善奎)·김익만(金益萬)을 비롯한 80여 명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너무 달라 해체하고 1980년 지금의 정자로 복원하였다. 현판은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이 썼다. 월송정은 2008년 마루 부분의 보수공사를 마쳤다.
[형태]
월송정은 정면 5칸, 측면 3칸, 약 86㎡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현황]
1985년 안내 간판을 새로 만들고 진입로를 확장하고 포장하였으며, 약 1,157㎡의 주차장을 마련하였다. 1987년 도비 3000만 원으로 주변을 말끔히 단장하였고, 1989년 산책로 1,200m를 조성하여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주변에는 송림을 자랑하는 구산해수욕장이 있다.
[의의와 평가]
경치가 아름다워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과 더불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 7번국도를 따라 평해교차로에서 월송정방면으로 내려가며 작은 사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은 평해읍 시내, 백암온천방면
왼쪽으로 Turn! 해서 조금만 가면 월송정입구가 나온다.
▲ 월송정 입구에 편의점이 있다. 월송정 호수에서 민물 낚시나 바다낚시를 하실 분들은 여기서 이것저것 구입하면 되고 월송정으로 들어가서도 작은 매점이 있다.
▲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 월송정 들어가는 입구이다. 주변의 소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으며 경치가 좋다.
▲월송정 들어가는 입구에
'황락의 유허비' (유허비란? :선현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가 보인다.
▲ '대한민국 황씨도시조 유래락전'
황씨가 처음 울진쪽에 오게된 유래를 설명해 놓았다.
[황락은 후한 광무제의 신하로, 교지국(현 베트남)에 사신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경북 울진군 평해읍에 표류해온 것으로
전해
.]라는 내용
▲ 입구를 지나/ 월송정은 앞의 길로 똑 바로 가면된다.
▲ 천정을 한 번 쳐다본다. 깔끔한 모습이 최근에 말썽도 많았던 남대문 개보수 처럼 뒤틀린 나무도 없는듯 하다.
▲ 입구의 왼쪽에 또 비석이 서 있다. 애국지사 '황만영' 선생의 기념비의 설명이다.
▲ 황만영 선생의 기념비와 오른쪽에는 '황씨 시조제단원'이 있다.
▲ 이곳의 소나무 생육이 상당히 좋으며 '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누리상'을 수상
▲ 소나무 모양들이 모두 좋으며 전체의 모습으로도 좋은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듯 하다.
▲ 소나무와 기와가 잘 어울려있다.
▲ '황씨 시조제단원' 입구인데 문이 잠겨있으며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조그만 문이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 '황씨 시조제단원' 안을 한 번 본다. 소나무와 전체적인 제단원의 모습이 잘 어울리며 마음이 평화로워 진다.
▲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제단원의 모습에서 마음은 더 없이 고요해져 온다.
▲ 안에 들어가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큰 비석이다. 글자도 몇 자 없는데 비석은 상당히 크다.
넓은 공간에 글자수가 몇 글자 되지않으니 전하는 의미는 더 커 보인다.
황씨 종친회에서의 자료를 한 번 찾아보았다.
都始祖 黃洛 祭文(도시조 황락 제문)
中朝玉佩(중조옥패) 海而東(부해이동)
克開克昌(극개극창) 萬世爲宗(만세위종)
※해석
중국 조정에 벼슬을 하시고, 사신으로 베트남에 가시던 중에 풍랑을 만나 바다에 표류하여 뗏목을 타시고,
동해안 평해 월송에 정착하시어, 문호를 열어 지극히도 그 자손을 번창시키셨으니, 대한민국의 황씨는 몇 만대를 내려간다 해도
우리 황가의 근본이 되십니다.
▲ 위의 글에 대한 해설을 한 번 찾아봤습니다.( 출처: 황씨 대동종친회)
黃洛(황락)公께서는 중국의 학사로서 서기28년 신라 유리왕 5년에 중국의 사신으로 베트남(옛 交趾國=越南)에 가시던 도중 동해에서 풍랑을 만나 경북 울진군 평해 앞 바다에 太初로표착하셨다. 도시조 黃洛(황락) 公께서는 월송포 북원에 상륙하여, 동해사안 월송봉 남록에 垈地(대지)를 축조하고, 세거에 靈地(영지)를 닦아 정착하셨다.
대한민국 황씨 도시조 黃洛(황락)公께서는 후손인 3형제가 있어서, 큰 아들 황갑고(黃甲古) 公께서는 기성군(箕城君)에 봉해져서
평해황씨의 시관조(始貫祖)가 되셨고, 둘째 아들 황을고(黃乙古) 公께서는 장수군(長水君)에 봉해져서 장수황씨의 시관조(始貫祖)가 되셨으며, 셋째 아들 황병고(黃丙古) 公께서는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져서 창원황씨의 시관조(始貫祖)가 되셨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황씨는 동근동조로서 본관은 평해(平海),장수(長水), 창원(昌原),우주(紆州),상주(尙州),회덕(懷德),덕산(德山),관성(管城),제안(齊安),성주(星州)등으로 오늘날 70만에 이르러 명문거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上世(상세)로부터 학사공 黃洛(황락) 도시조 遺墟(유허)에 제단을 봉건하고, 매년 十月 中丁日에 전국에서 후손들이 모여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中丁日이란(中旬):그 달의 11日부터 20日까지의 10日 동안, 丁日:日辰의 天干이 丁으로 된 날을 말한다. 例:丁未, 丁巳, 丁酉, 丁丑 等이다.
▲ 추원제
▲ 유명인사 방문기념비를 한 곳으로 모아두었다.
▲ 소나무가 잘 자라고 있으며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 숭모문의 입구이다. 이곳에 제단이 있다.
▲ 돌장승이라고 하는지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어쩌 손님이 왔는데 돌장승은 인사도 모르고 그냥 묵묵히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듯 하다.
▲ 돌장승의 얼굴을 한참 드려다 보았다. 미소를 머금고 그냥 서있다.
인사를 한 번 건네본다. " 안녕 하세요? 하우 두유 두? " . 에~~고 ~ 역시 말씀이 없으시다.
▲ 열린 문틈으로 많은 비석들이 서 있다. 뭔가 좀 엄숙한 느낌이 들기고 하고 해서 들어서자 마자 잠시 묵념을 하고 둘러보기로 했다.
▲ 뭔가 과거에 많은 일을 한 분들의 제단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그렇다.
▲ 황씨 가운데 과거에 높은 위치에 오른 분 그리고 사회에 명성을 얻었던 분들의 제단을 한 곳에 모아놓았다.
▲ 한개를 집중적으로 한 번 훑어본다. 고려시대에 좌의정에 올랐던 '황휘우'의 제단이다.
▲ 위의 황휘우의 제단비 뒤편을 한 번 본다.대충은 병조(국방)부문에 고위관료 또는 좌의정으로 있었던 분이며 부인과 자식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연도를 보니 단기 4300년으로 되어 있는데 올해 2014년이 단기 4357년이니 57년전에 이 비석을 세운 모양이다. 단기는 현 연도에서 2333년을 더하면 된다.
▲ 가운데 보이는 것이 '황락'제단이다.
울진에 처음 들어온 분 답게 제일 가운데 그리고 제일 위쪽에 위치해 있다.
▲ 오른쪽으로는 비석의 색깔로 봐서는 그렇게 건립연도가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 정면에서 입구방향으로 제단이 있으며 매년 여기서 유교식 제사를 지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 "한학사황공락지단(漢學士黃公洛之壇)"황락의 금석문 제단비인데 여러개의 제단이 모셔지 곳에 두지 않는 이유는 홰손 때문인듯 하다
이렇게 한쪽에 원본비석을 두고 모조품을 만들어 숭모제단 안에 세워둔 것 같다.
▲ 뒤로 돌아가 봤다.글자는 “숭정후재갑술시월일(崇禎後再甲戌十月日)” 건립 연대는 1694년(숙종 20) 10월로 기록이 되어 있다.
2014년-1694년= 320년 전의 금석문이다.
▲ 작은 호수가 있는데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에는 풍경이 아주 좋다.
▲ 나와서 월송정 방향으로 조금 올라오면 숭덕사가 있는데 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했다.
▲ 담너머로 잠시 드려다 본다.' 숭덕사' 조상들을 기리기 위한 집이며 무슨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을 것도 같다.
▲ 똑 바로 걸어가면 월송정 안내판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월송정이 나온다.
소나무 군락과 안내간판이 약간 하모니를 이루지 않는 느낌이 든다.
▲ 왼쪽의 소나무 군락지와 마음을 편하게 해주며 사람이 분비지 않아 산책길로서는 그만이다.
오른쪽 집은 작은 매점이며 주차장이 있다.
▲ 월송정 휴게소 식당,매점이 있다. 식당의 메뉴는 김밥,즉석라면등을 파는 모양이다.
물론 여기 전체가 금연구역이다.
▲ 월송정으로 들어가는 입구/ 호젓한 길이 마음에 들며 길 양편으로 펼쳐진 소나무들이 길손의 마음을 편케한다.
▲ 월송정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 월송정 중건비/ 이은상 선생이 글을 지었다.
▲ 정자의 아랫부문의 다리/ 전체적인 정자의 건물이 꽉짜여진 느낌이 든다.
▲ 올라가는 계단인데 많은 사람들이 왔었는지 계단이 말해주는 것 같다.
▲ 월송정 위의 시들
▲ 안축의 시/ 자료를 찾아서 올려본다.
詩題: 次越松亭詩韻 - 謹齋 安軸 - 事去人非水自東[사거인비수자동] 일도가고 사람가도 물은자연 동쪽으로
千金遺種在亭松[천금유종재정송] 천금같은 종자남겨 정자솔만 남았구나.
女蘿情合膠難解[여라정합교난해] 겨우사리 정이합쳐 떼어내기 어렵겠고
弟竹心親粟可舂[제죽심친속가용] 아우대는 마음친해 좁쌀방아 찧겠구나.
有底仙郞同煮鶴[유저선랑동자학] 어찌하여 선랑들은 함께학을 구웠던가
莫令樵夫學屠龍[막령초부학도룡] 나무하는 초부들은 용잡는법 배움마라.
二毛重到曾遊地[이모중도증유지] 머리털이 희여서야 놀던곳에 찾아오니
却羨蒼蒼昔日容[각선창창석일용] 옛모습이 그대로인 푸른솔이 부럽구나.
# 안축에 관해
본관 순흥(順興). 자 당지(當之). 호 근재(謹齋). 시호 문정(文貞).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금주사록(金州司錄) ·사헌규정(司憲糾正) ·단양부주부(丹陽府注簿)를 거쳐, 1324년(충숙왕 11)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요양로개주판관(遼陽路蓋州判官)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고려에 돌아와서 성균학정(成均學正)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를 거쳐, 충혜왕 때 강릉도안렴사(江陵道按廉使)가 되어 이때 문집 《관동와주(關東瓦注)》를 지었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판전교지전법사(判典校知典法事)에서 파면되었다가 전법판서(典法判書)로 복직되고, 그뒤 내시(內侍)와의 불화로 파직되었다. 1344년(충혜왕 5) 밀직사지사에 이어 첨의찬성사, 1347년 정치도감판사(整治都監判事)로 양전(量田)에 관여하였다. 뒤에 민지(閔漬)가 만든
《편년강목(編年綱目)》을 개찬(改撰), 충렬 ·충선 ·충숙 3조(朝)의 실록(實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경기체가인 《관동별곡(關東別曲)》 《죽계별곡(竹溪別曲)》을 남겨 문명(文名)을 날렸다
허필의 관동팔경도경 월송정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
옛날 월송정 그림이다.
▲ 앞쪽이 바다방향이다.
▲ 정자위에서 본 입구방향
▲ 다리모습을 찍어봤다. 든든하게 만들어져 있다.
▲ 바다방향에서 본 월송정의 모습
▲ 바닷가에 나가봤다. 멀리 기성면의 구산항과 항구가 보인다.----> 구산항과 그 주변보기
▲ 입구방향에서 어느 관광객 두 분이 올라온다.
▲ 바다쪽으로 나가 작은 호수에서 낚시꾼들이 낚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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