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계서원의 정면모습/주변엔 소나무가 시원하게 가꾸어져 있으며 그 옛날 이곳에서 글을 읽는 소리가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봄바람에 들리는듯 했다.
- 주 소 : 경북 울진군 울진읍 고성3길 31-68
- 문 의 : 월계서원 관리집
(전화 : 054-783-3709/ 월계서원 바로 옆에 관리인이 거주하는 집이 있는데 전화번호를 확인하지 못함 )
- 교통편 : 울진읍에서 고성리 방면으로 조금 가다가 도로변에 [월계서원]의 안내석이 있음.
월계서원의 초입의 도로를 따라 계속가면 울진군 구수곡휴양림, 덕구호텔스파월드, 울진숲길등과 연결이 되면 이곳에 가는 길에 잠시 둘러보면 좋은 역사공부가 된다.
- 주변의 볼거리 : 주변의 볼거리는 별로 없으며 울진읍의 농촌풍경을 둘어볼 수 있다.
- 식당안내 : 식당은 없으며 울진읍 시내에서 이용하기 바람.
- 둘러보기 팁 :
1. 입구에서 [방명록에 이름쓰시고]---> [월계서원 둘러보기]--->[뒷편의 국보관, 경덕사 둘러보기]--->뒤편에 있는
[장말익 신도비]를 둘러보고---> 주변의 경관등을 보시면 됩니다.
2. 울진읍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자동차로 약 20분 정도이면 도착할 수 있으며 가족, 연인들과 함께 조용하게 역사 공부하기에 좋은 서원. 조금 단조로운 느낌이 있으며 실내는 전부 볼 수 없다.
- 사진촬영 일자: 2014년 4월 11일(금)
- 촬영장소 : 울진군 울진읍 월계서원
- 촬영장비: 카메라/캐논 5D-Mark2, 렌즈/ 탐론17-35mm
울진에서 수 십년을 살면서 월계서원에 처음 본다는 것은 정말 창피스러운 일이였다.
더구나 울진읍이 고향이면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서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없었던 것은 그동안 서원에 관해 들어본적이 별로 없었던 이유도 있겠다.
그렇다고 장씨 문중에서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앞으로 누군가 울진군에 산재해 있는 울진문화재에 대해 울진군민들에게 상세히 알릴 필요는 있을 것 같고 나를 포함한 울진읍민과 더불어 울진군민 모두가 울진군에 있는 문화재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옛것을 더듬과 익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미래의 계획을 한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우리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래의 자료는 울진디지털문화대전 http://uljin.grandculture.net 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울진군에는 국보가 둘 있는데 하나는 봉평에 있는 ' 울진봉평신라비' 그리고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장양수 급제패지'
이다.
# 월계서원
- 개요
월계서원은 울진장씨의 관시조인 매계(梅溪) 장말익(張末翼)과 그의 8세손인 판서 장양수(張良守) 양현(兩賢)을 배향하고 있다. 1856년(철종 7)에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 향내 사림들의 장계(狀啓)에 의하여 월계사(月溪祠)가 창건되었고, 1862년(철종 13)에 예조의 관문승원예에 의하여 월계서원이라 이름 붙여졌다.
1868년(고종 5)에 철폐당하였다가 1924년과 1925년에 향내(鄕內) 유림에서 고성리 가원동으로 이건하여 세덕사(世德祠)라 하다가 3년 후에 경덕사(景德祠)로 개칭하였고, 광복과 더불어 월계서원이라 복칭(復稱)하였다. 매년 10월 정일(丁日)에 향내 유림들이
배향하고 있다.
월계서원에는 우리나라의 행정 문서로는 가장 오래된 장양수 급제패지가 소장되어 있다.
장양수가 1205년(희종 1)에 진사시 병과에 급제하여 내려진 급제패지는 현재 남아 있는 실물 4건과 전사(轉寫)되어 전해지지는 2건 등 총 6건의 고려 홍패 중 가장 오래된 실물로서 국보 제181호로 지정되었다.
월계서원의 사당인 경덕사(景德祠) 옆에 따로 국보각(國寶閣)을 지어 금고 안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으며
외부에는 모사본(摸寫本)을 전시하고 있다.
장양수 급제패지에는 세로 44㎝, 가로 88㎝의 누런색 마지(麻紙) 두루마리에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로
종 12줄이 기록되어 있는데, 학자들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불과 몇 자의 결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독이 가능하다고 하나 육안으로는 ‘우인장양수교가병과교고첩급제패지(右人張良守敎可丙科敎古牒及第牒旨)’ 등의 글자가 어렴풋이 보인다.
# 장말익 신도비
장말익(張末翼) 신도비는 장양수의 신도비와 함께 월계서원에 세워져 있다.
장말익(張末翼)의 호는 매계(梅溪)이며, 시호는 문성(文成), 본관은 울진이다. 1036년(정종 2)에 울진읍 고성리에 입향한 것으로 전한다. 장말익은 고려 정종(靖宗) 때 태어나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이 호부상서문하시중평장사상주국(戶部尙書門下侍中平章事上柱國)에 이르렀으며, 울진부원군(蔚珍府院君)에 봉해졌다.
자손들이 이로 인해 울진을 본관으로 삼아 관시조(貫始祖)로 모셨다.
장말익은 울진에서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어 신망을 받았고, 삭방도(朔方道)[고려 때의 강원도] 안렴사(按廉使)로 있을 때, 울진군 읍성인 산내성(山內城)의 성내 지형이 좁아 성을 넓히고 성벽을 높이 쌓았다.
한편 여러 차례의 병란으로 장말익의 사적이 인멸되어 묘소조차 찾지 못하게 되자 후손들이 1774년 울진읍 고성리 남쪽 기슭 경좌(庚坐)에 제단을 설치하여, 매년 3월 3일 제사를 지냈고, 월계서원에 배향하였다.
▲울진읍에서 조금만 가면 도로변에 안내석이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진입하면 된다.
▲이렇게 도로변에 안내석이 있으며 앞에 보이는 다리는 건너서 약 300m 정도 들어가면 된다.
▲마을로 들어가면 안내간판이 있다.
▲월계서원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마침 4월의 벚꽃이 활짝 피었다.
▲월계서원의 전경이다.
▲올라가는 계단을 돌을 보았는데 상당히 오래된듯 이끼가 여러군데 끼어있다.
▲관리인이 사는 집이다. 할머니 한 분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관리인은 잠시 자리를 비운듯.
▲앞에 보이는 것이 월계서원이다.
▲월계서원의 뒤편의 모습
▲장양수 홍패에 대한 설명글
▲서원 밖에서 한 번 보았는데 정리정돈이 아주 잘 되어 있다.
▲나도 잠시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다.
▲'경덕사'로 올라가는 길
▲'경덕사' 말 그대로 조상의 덕을 공경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장양수 급제패지'가 보관되어 있는 국보각/ 국보는 따로 보관을 하는 모양이다.
▲'장말익 신도비'와 조상들을 모셔놓은 곳이다.
▲사자상이 입을 크게 벌리고 나를 위협하고 있다. 영어로 인사를 해봤다.
오후라서 "Good afternoon" 라고 하니 영어를 한다고 화를 내는듯 해서 그냥 윙크를 하니 웃는 것 같아서 그냥 들어갔다.
▲ 신도비 좌우로 입향조 순서대로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 전경
▲비석이 하도 오래되어 글자를 깨끗이 보수를 해놓은 것 같다. 그냥 "군 장 제단" 이라 해두었다.
▲'숭정후삼갑오정월일립' / 중국의 연호를 사용한 것 같다. 자료를 찾아보니 '숭정'은 중국의 명나라 마지막 연호이다.
왜 그 당시에 중국연호를 사용했는지 역사학자가 아니라서 저는 ...
'갑오'는 숭정연호중에 1654년으로 나오는데 그 앞에 '三'이 의미하는 것을 모르겠다. 세 번째 맞는 '갑오'라는 뜻인지....
'정월일립'은 말 그대로 세웠다는 의미겠고요.
▲고려호부상서문하시중평장사상주국봉울진부원군문성공매계장선생신도비
(高麗戶部尙書門下侍中平章事上柱國奉蔚珍府院君文成公梅溪張先生神道碑)
고려호부상서문하시중평장사상주국봉울진부원군-> 자료에는 그 당시의 벼슬이름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의미와 비석을 세울때의 후원자 이름등이 기록되어 있다.
▲마당을 나오려니 두릅이 싹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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