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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강원도

두타산(1,353m) 겨울산행(2014년 3월 8일/토)

# 두타산(1,353m) 겨울산행(2014년 3월 8일/토)

 

- 산행장소: 삼척 두타산 (천은사--> 쉬음산--> 두타산)/ 약 11km
- 산행자: 흰들사랑, 알비노
- 산행일자: 2014년 3월 8일(토)

봄은 코 밑에 와 있는데 아직 바람은 차다.

일주일의 노고를 산에서 위안을 받으려 한다고 하면 산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일 일까?


어느 의학자의 말에 의하면 장수의 비결중의 하나는

일 주일에 최소한 두 번 정도 자연과 벗 하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오래 살기보다는 산행을 통해 일상사의 빠른 호흡을 멈추고
자연과 호흡하며 대화하며 나 스스로를 점검하고 마음을 다지며 끊임없이 걸으며 평소 내 생활에 대한 반성과 다짐등을
하기위함이다.

물론 건강관리도 하며....

하지만 산에서 내려와 실생활에서는 산길에서 반성하고 다짐한 일들은 산행후 하루가 지나면 이 모든 것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나마 내가 희망이라 생각하는 부문은 그런 것들 중에 증발하고 사라지지 않는 조그만 것들이 분명 오랜세월 산길을 통해 내 마음 속에 조금씩 자리하기를 믿기 때문이다.

 

몇며칠 차가 말썽을 핀다. 정비공장에 근 1주일 정도 맡겨서 수리를 했는데도  두타산에 가려니 불안하다.
하지만 어쩐다.
동행인( 산악회원/ 필명:흰들사랑)의 차의 상태도 그렇게 좋지않다고 해서 내 차로 움직이기로 하고 아침 8시에 울진을 출발했다.

 

삼척과 동해에 걸쳐 있는 두타산은 거칠기로 유명하다.

두타산 주능선의 청옥산, 고적대등은 백두대간의 구간이기도 하며 정상부의 거치름은 상당하다.

 

오늘의 산행지는 천은사--> 두타산으로 정했었다. 겨울이라 정상부에 눈도 많을 것 같고 눈길의 산행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을듯 해서 이 코스를 정해서 길을 나섰다.

일전에 똑 같은 코스로 한 번 올라간 등로이다.
이 번 산행은 정말 힘이 들었다.

쉰음산에서정상까지 폭설로 인해 리셀도 많이 되어있지 않고 중간중간 무릎까지 빠지는 눈으로 인해 어떤 구간은 기어서 가기도
했다.
체력소모가 상당했으며
나중에 천은사로 되돌아 내려올때는 밤이 되었으며 비상 렌튼 없이는 정말 어려운 산행이 될뻔 했다. 

 

1. 천은사 가는 길

  - 삼척시내에서 천은사로 가는 길은 찾기가 쉬움 ( 오십천로--> 사둔삼거리--> 천은사)

  - 천은사 주소 :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785

 

2. 등산 포인트

1) 천은사 둘러보기

2) 천은사 약수물 맛보기

3) 사진촬영 추천 장소 : 천은사, 쉰음산 부근, 주능선 분기점 부근, 정상

4) 등로특징 : 주능선 분기점에서 정상까지는 상당한 급경사와 많은 체력을 요구함.  

5) 쉰음산과 두타산, 천은사의 가을풍경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가을풍경보기

 

3. 천은사에 대해( 자료출처 : 천은사 다음카페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785번지 두타산 자락에 위치한 천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며 동안거사 이승휴가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제왕운기'를 저술한 곳이다.
창건역사는 신라 경덕왕 17년(738년) 인도에서 두타의 세 신선이 흰 연꽃을 가지고 와서 창건했다는 '백련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뒤 흥덕왕 4년(829년)에 범일국사가 극락보전을 건립함으로써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고려 충렬왕 때는 이승휴가 삼화사에서 대장경을 빌려다 10년동안 읽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으며 거처하는 곳을 간장암이라고 바꾸고 절에 희사하였다.1958조선 선조 때 청허당 서산대사가 절을 중건하고 '흑악사' 라 하였다. 다시 고종36년(1899년)에 이성계 4대조의 묘인 목조릉과 5대조비인 준경묘와 영경묘를 미로면 활기리에 수축하면서, 이 절을 원당사찰로 삼고 `임금의 은혜를 입었다' 하여 '천은사天恩寺'라 불렀다.
 1948년 큰 불이 나서 완전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는데 1983년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두대간을 타고 흘러 온 기운이 두타산에서 한줄기 지맥을 형성하여 오십정산(쉰움산)을 이루고 다시 그 기운이 흘러 드는
오십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산 정상에 쉰개의 움(우물)이 있다고 해서 '쉰움산' 한자로는 '五十井山'이라 한다.

 

4. 두타산의 기본설명 (자료출처: 삼척시청 )

미로면과 하장면 그리고 동해시 무릉계곡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1,353m의 두타산은 삼척의 모산이며,
태백산맥의 주봉을 이루고 있으며, 청옥산, 쉰움산과 이어져 있다.
두타산은 바람의 산이라 할 만큼 바람이 모질게 부는 곳으로,산 이름인 두타는 불교용어로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弗道)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삼척시의 영적인 모산(母山)으로서 선망의 대상이기도 한 두타산은 태백산맥의 주봉을 이루며 쉰움정, 용소, 주목군, 철쭉등이 유명하며 제왕운기를 저술한 이승휴의 유허지인 천은사가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빼어난 산세와 희귀동식물의 비경이 감추어져 내려져오고 있는 곳이다.
* 두타산성 : 동북쪽 산허리 험준한 곳에 둘레 8607척의 석성이 있어 이것을 두타산성이라고 한다.

 

 천은사 주차장/ 그렇게 넓지 않으며 경내로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이곳에서 주차를 하면 된다.

 

 천은사로 들어가는 길 / 주차장에서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음

 

 입구에선 나무와 풍경이 아름답다./ 가을에는 사진찍기 좋음

 

 오른쪽에 동안사가 눈에 띈다. 이승휴 선생의 사당이다.
잠시 이승휴 선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다.

제왕운기의 저자 이승휴 


이승휴는 고려 고종11년 1224년에 태어나서 충렬왕 26년 1300년까지 살았던 고려 후기의 문인이며 정치가였다.
이승휴의 자字 휴휴休休이며, 자호는 동안거사動安居士이다. 경산 가리현加利縣 가리이씨의 시조이지만, 삼척 외가에서 태어나고,삼척 사람이다. 그가 가리현인으로 되어 있을 뿐 실제로 그곳에 어떤 연고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고 그의 일생 대부분은 외가外家인 삼척의 두타산 밑 구동龜洞,지금의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에서 보냈다.
대현 이율곡이 외가인 강릉의 역사인물인 것처럼 이승휴도 삼척의 역사인물로 숭앙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고종39년 1252 년 이승휴는 29세의 늦은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고 어머니가 계신 삼척으로 금의환향했으나
1253년 몽고의 제4차 침입으로 강도로 가는 길이 막히게 되자, 삼척의 요전산성에서 몽고군과 대항하여 싸우기도 했다.

이 때부터 이승휴는 두타산 밑의 구동으로 들어가 지금의 천은사 옆 냇가인 용계(龍溪)변에 집을 짓고, 몸소 농사를 지으며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게 된다. 그러다 그의 나이 40세 되던 해인 1263년 관동안집사關東安集使로 온 이심(李深)의 주선으로 강화에 들어가, 다음 해 경흥부(강릉) 서기로 발탈됨으로써 관계(官界)에 첫발을 딛게 된다. 그렇지만 그의 지방관 생활은 오래지 않았고, 곧 중앙의 도병마록사都兵馬錄事로 승진되어 중앙정계의 핵으로 급부상한다. 그러나 충렬왕6년(1280) 감찰사의 관원과 함께 국왕의 실정 및 국왕 측근인물들의 전횡을 들어 10개 항목으로 간언하다가 파직당하고 만다.

이승휴는 파직당한 후 다시 삼척현의 구동으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당호(집이름)를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용안당容安堂이라 하였다. 이 때 그는 국사와 세론에 일체 함구하고자 결심하고『 제왕운기帝王韻紀』와 『내전록內典錄』을 저술하였다. 이것이 제왕운기가 탄생한 배경이다.

『제왕운기』는 상하 2권 1책으로, 상권은 중국의 역사를 신화시대부터 원나라의 흥기까지 7언고시七言古詩 264구句로 읊어놓았으며, 하권은 우리나라의 역사 「동국군왕개국연대」와 고려조의 역사「본조군왕세계연대」로 나누어 각각 264구 1460언의 7언고시, 152구 700언의 5언고시로 기술하고 있다.

『제왕운기』는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저술하였는데
우리나라를 중국과 동등한 위치에 놓았으며, 《단군檀君》을 우리민족의 시조로 내세워 우리민족이 단군을 중심으로 하는 단일민족임을 강조했고, 최초로 우리나라 전체를 《조선朝鮮》이라고 지칭했다. 또한 발해사를 현존 사서 가운데 최초로 우리민족사에 포용하였으며, 우리문화를 중국과 구분되는 독창적이고 우수한 문화임을 강조했다. 사대를 표방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이처럼 중국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대등한 구조 속에서 읊고 있는 것은 투철한 민족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왕운기』를 저술하고 2년 후 1289년 용안당 남쪽에 보광정保光亭을 건립하고 그 곁에 표음정飄飮亭이란 샘을 만들고, 정자 아래 지락당知樂塘이란 연못을 시설하여 살다가 71세 되던 해 1294넌 홀연히 용안당의 간판을 간장사看藏寺로 바꾸어 놓고 모든 재산을 불가에 희사한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이승휴를 특별히 기용하여 개혁정치의 중심세력으로 활약하게 한다. 그러나 국정이 계속 표류되자 이승휴는 자신의 힘이 미력함을 인식하고 벼슬에서 물러난다.
이승휴가 벼슬자리를 내놓고 정든 구동으로 돌아온지 2년 후인 1300년 10월, 77세의 나이로 다사다난했던 생을 마치게 된다. 고려사 열전 이승휴조 끝 부분에 “성품이 정직하고 세상에 구함이 없었으며, 심히 부서법(불법)을 좋아했다”라고 평하였다. 현재 그의 묘가 성주에 있다고 하나 확인할 길이 없다. 이승휴의 아들은 3형제인데, 첫째아들의 이름은 임종林宗으로 등과하여 헌부산랑의 벼슬에 있었으나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모셨고, 둘째 아들은 담욱曇昱으로 출가하여 불제자의 길을 갔으며, 셋째 아들은 연종衍宗으로 등과하여 사헌규정을 거쳐 밀직사 겸 감찰대부에 이르렀다. 
                                       (위의 글은 천은사의 다음카페  http://cafe.daum.net/cheoneunsa 에서 발췌함)

 

 

 이승휴 선생의 사당이다. 일정관계로 직접 둘러보지 못했다.

 

 흰들사랑님의 기념촬영을 한 컷 하고...뒤편에 보이는 것이 대웅전이다.

 

  천은사 들어가는 입구

 

 요사채의 모습 / 스님들이 기거하는 방인가 보다.

 

 법고, 운판,목어가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목어의 무늬와 얽힌 이야기등은 일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잊어버렸다.
소리를 통해 만물을 일깨우고..등등...

 

 5층 석탑과 극락보전

 

 약수물이 정말 좋다. 제작년인가 왔을 때 졸졸 흐르는 약수물이였는데 새로 만든 모양이다.

 

 흰들사랑님이 등로를 따라 오르고 있다.

 

  나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숨을 고르며

 

 중간에 오르다 잠시 기념촬영을 했다.

 

  이정표 앞에서 휴대폰 체크를

 

 조망이 아주 좋다. 쉰음산 가기전에

 

쉰음산을 지나 멀리 두타산의 정상이 보인다. 보이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데 왜 이렇게 먼지 모르겠다.

 

 

 두타산의 주능선이 보인다.

 

배가 고파 안되겠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라면과 밥 그리고 간식등을 챙겨 먹는다.
날씨가 추울때는 절대 가스버너를 갖고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않아서 가스버너를 갖고 갔는데

정말 곤란했습니다.

 

  쉰음산에서 부터 눈이 장난이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기어서 가기도 했습니다.

1m 이상의 눈 깊이에 어디서는 무릎 전체가 빠져 걷기에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올라가다 잠시 백두대간 능선을 한 번 바라본다.

고적대 올라가는게 제일 힘든다.  작년에 고적대와 해서 청옥산으로 한 번 다녀왔다.
두타산의 주능선의 각 지점을 표시해 두었다. 저 길도 한참에 끝내는 산악인들도 많다.

 

주능선의 풍경을 한 번 쳐다보며..../위의 지점표시 사진과 같은 사진이다.

 

주능분기점에서 정상방향으로

 

  주능분기점에서 정상으로 바라보며

 

 

 

 긴급상황발생시의 안내판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데 좋은 아이디어 같다.
스프링으로 해서 나무에 부담을 주지않게 만들어 놓았다.

 

 정상에 오르니 두 연인만 와 있다. 저도 둘이서 이동을 했는데 제가 나중에 오르고 먼저 오른 분은 내려오고 길이 어긋나서
같이 사진을 찍지 못했다.

 

  정상에서 포즈를 한 번 취해본다.

 

 두타산의 정상 / 조망이 상당히 뛰어나다.

 

 두타산의 정상

 

 내려오는데 어둠이 진다. 겨울산행시 렌튼과 아이젠, 스페츠는 늘 배낭에 넣어두는 것은 필수다.

 

 삼척 쪽으로 오다보니 정월대보름 축제가 열린다. / 눈 때문에 연기되었다고 해서 잠시 구경을 하고...

 

  돼지 바베큐이다. 군침이 꿀꺽~~

 

 인디언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고 듣기에도 좋다.
귀에 익은 음악들이 자주 나온다. 어느 관람객이 휴대폰 촬영을 하는 모습도 이쁘다.

 

 

 한참을 서서 음악에 심취해 본다. 저 악기를 좀 배우고 싶은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 흰들사랑님의 기념촬영

 


등로를 한 번 그려봤다.

1) 천은사-- 쉰음산 구간 : 초입에서 계속 오르막길.

2) 쉰음산 :사진촬영 장소 좋음

3) 쉰음산- 주능분기점 : 급경사이며 가끔 사진촬영이 좋은 지점이 있음

4) 주능선분기점- 두타산: 아주 급경사이며 체력소모가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