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재 대피소에서 1박후 무룡산으로 올라가던 중 일출을 맞는다. 일출 바로 전의 동쪽으로 바라본 풍경
▲ 향적봉에서 걸어온 서봉과 남덕유를 바라본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관광객들로 사람들이 향적봉에는 꽤나 사람들이 분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남덕유' 그리고 왼쪽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향적봉이다.
덕유산은 1975년, 오대산과 더불어 국내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으로 전북 무주와 장수, 경남 거창과 함양에 걸쳐있고
지리산 화대종주가 이 번에 다녀온 덕유산 종주 보다 더 힘든 코스 같은 느낌이며 무주 구천동에는 매년 여름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하산시 백련사 아래의 계곡물에 발을 담궈보니 얼음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무척 차가운 계곡물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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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거리 산행을 떠난다. 때문이다.. 덥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녹음이 우거진 숲과 나무 밑으로 걸어가는 구간이 많아 더운 날씨를 피할 수 있었다.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별빛만 반짝이는 밤길을 혼자서 걸어가는 호젓함과 명상의 기회. 잊을 수 없는 덕유산 종주였다.
안타까웠던 것은 구천동에서의 바가지 요금과 벼락과 함께 구천동에서의 갑작스런 소나기. 백련사에서 구천동까지의 지겨운 평길. 이것들은 이번 여행에서의 겪은 불편함 이지만 어쩐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기분만 느끼고 살 수는 없는 일.
산에서 내려와 월요일 부터 일을 해야하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산 중독증세가 있는게 아닐까? 다른 것은 몰라도 산행중독 증세는 나에게는 즐거운 증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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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진 종합버스터미널에 출발전에 개인택시 하는 친구가 응원의 음료수 한 잔을 사준다.
이름은 남동규/ 울진에서 택시 이용하실 분은 010-2508-6822 로 전화하시면 출장까지 갑니다. 많이 애용해 주이소~~^^
2. 삶은 달걀 맛은 한 겨울철 야밤에, 그리고 터미널에서 먹는 맛이 제 맛이다. 일단은 먹고 보자~^^
▲1. 터미널에 안보이던 민원열람 시스템이 설치되었다. 직업상 테스트 겸해서 이것 저것 만져본다. 기본은 되어있다.
상세한 정보는 역시 울진을 방문하는 방문자의 몫인듯 하다. 문제는 공공기관의 이런 설치물은 통념상 정보이고 사용자가 얻으려는 정보는 더 상세한 정보인데 어떨지 모르겠다.
2. 일단은 대구 동대구 버스터미널이다. 20,900원이다. 대구까지 무정차로 2시간 30여분 걸린 것 같다. 버스치곤 빨리 간 편이다.
▲1.집 떠나면 나는 왜 이렇게 배가 고픈가? 터미널에 도착하기전 가까운 지하철 역에 내려달래니 내려준다.
역 옆에 '왕서방' 수타면이다. 값도 저렴해서 호기심에 들어갔다.
곱배기 한 그릇에 4,000원(자장면). 난 매번 곱배기다.
2. 면이 굵고 기계면 보다 텁텁한 느낌이 든다. 시장이 반찬이라 난 원래가 맛 보담은 양 위주라....꾸역꾸역 맛 있게 ..
▲1. 지하철을 타고 서대구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2. 대구는 역시 찜통이다. 아~~~~....무척 덥다. 겨울에는 춥고.
▲ 시간이 남아 서대구 시외버스터미널 옆의 관문시장에 한 번 들어가 봤다.
우선 놀라운 것은 가격이다. 떡과 반찬류는 울진시장의 가격과 비교해 50% 이상 저렴하다. 다른 것도 그렇고...
나도 울진사람이지만 울진지역의 물가가 높다는 것은 익히 알지만 울진군 전역의 상인들은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부동산도 그렇고.... 왜 그럴까? 오랫동안 내 머릿속 맴 도는 숙제거리다.
왼쪽에 ' 금이빨 삽니다' 코너도 있다.
언젠가 화장터에서 일하는 분들의 부수입에 대해 이야기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이야기와 맞물려 세상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1. 울진종합버스 터미널- 동대구 버스터미널- 지하철- 서대구 버스터미널- 함안군 서상면에 도착후 작은 버스터미널
2. 오늘은 첫 숙소인 산호장 모텔에 도착했다. 육십령 아래의 모텔은 여기가 한 군데.
손님은 나 밖에 없다. 친절한 주인장의 안내로 짐을 풀고, 샤워하고 내일 새벽을 준비한다.
▲1. 산호장 모텔에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여행은 불편해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모델과 민박집은 내겐 늘 편하다.
2. 전투장비들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 배낭을 다시 점검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장거리 산행시 그렇게 먹거리를 많이 챙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꼭 필요한 음식 이외는 전부가 짐이
된다. 개인적으로 미숫가루를 추천하고 싶다. 장거리 산행시 제일 중요한 것은 배낭의 무게를 얼마나 최소화 하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식수문제도 있을거고.
여름산행은 식수가 제일 문제인데 육십령에서 삿갓재까지는 식수는 없다.
그나마 삿갓재에서의 약수물은 가물어서 그냥 실금실금 수준.
육십령에서 삿갓재까지 2 리터의 물을 지고 갔다. 삿갓재 도착전에 고갈. 대피소에 도착하자 마자 약수터에 달려갔다.
쫒아가다 다리에 힘이 빠진 상태로 한 번 자빠지고......................... 자빠져도 재미있었다.
▲1. 산호장 모텔은 식당도 겸해서 운영을 한다. 식당에서 삼겹살 2인분을 거뜬히 해치우고 체력을 비축했다.
2. 밤이 깊어오고...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창문을 열어두고 잤었는데 새벽에 정말 추워 문을 닫고 잤다. 기온차가 상당한 것 같았고
밤과 새벽에는 정말 추울정도로 온도가 내려갔다.
▲1.새벽 5시가 안되어 들머리에 입장/ 혼자서 장거리 산행을 하려니 그래도 걱정이 앞선다. 성모님께 잠시 기도하고...
2. 조금 오르다 보나 뭔 소리가 요란하다. 기계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 울음소리도 같이 뒤섞여 울리는 것이 무슨 공장 같다.
잠시 멈추어 먼거리에서 살펴보니 오리농장이다. 무진장 큰 오리농장이며....어제밤에 묵었던 산호장 전문요리가 오리고기인 이유를 이제서야 파악.
▲깊은 산에서의 일출을 본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해가 뜬다. 새벽녘의 등로옆으로는 이슬 머금은 풀잎들과 새벽녘의 새소리. 이곳이 천국인듯.
혼자서 걸으며 나는 또 무슨 생각에 잠긴다.
생각을 해본들 뭐 하랴? 고만고만한 생각에 뭘 더 생각할게 있을까?
정말 좋은 길이다. 어쩐지 등로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게 이상하다. 산꾼들은 이게 아닌데....하면서.
▲할미봉을 오르기 전에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다 본다. 별로 안왔는데 숨이 차다. 내 체력에 문제가 있는걸까?
▲할미봉을 오르는 구간은 꽤나 험하다. 밧줄로 타고 오르기도 하고...그렇게 올랐다. 뒤에 보이는 산이 서봉, 남덕유산인데..
아~~ 할미봉에서 본 두 봉우리가 두 눈을 가로 막고 있었다. 저렇게 높을 수가?
할미봉도 꽤나 높은데 처음 보는 남덕유산과 서봉의 위엄이 대단했다. 사실 서봉이 더 산답게 느껴졌다. 바위산으로서 올라가기 만만찮은 느낌이 들지만 어쩐다?
▲할미봉을 내려서 앞을 쳐다본다. 그것 참~~ 높네. 갑자기 답답증이 몰려온다.
▲1. 소나무가 몇 그루 눈에 띄길래 유심히 드려다 본다. 생육상태가 울진 소나무와 금강소나무와는 비교가 안된다.
원인이 뭘까? 하는 생각과 생육환경, 지구의 온난화 등 많은 요인들이 머릿속에 스쳐가며 나름 결론로 내 본다.
나무의 표피도 그렇고 소나무 잎도 그렇고 영 말이 아니다.
2. 개인적으로 산죽길을 좋아한다. 높지도 않는 이 길.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낀다. 반바지 차림의 내 맨살 허벅지를 스치는 대나무 잎 소리가 괜찮다.
▲1. 내가 세상에 제일 자신이 없는게 꽃 이름 아는 것과 그림이다.
2. 남덕유산 옆에 있는 서봉. 입이 벌어진다. 나름 거리와 내 체력과의 계산에 머릿속이 복잡해 진다. 쉬다 걷다 걷다 쉬다.
그렇게 올라갔다.
서봉은 바위산이며 그 위엄이 남성답다. 남덕유산은 여성스럽고...
▲왼쪽이 서봉, 오른쪽이 남덕유산이다.
▲1. 나의 지력을 테스트하는 이름모를 꽃들.
2. 서봉에 올라서서 이름모를 동네들을 살펴보고,,,,한 여름철의 하늘을 본다. 시원하긴 시원하다.
▲서봉 옆의 헬기장에서 앞으로 갈 길을 눈으로 그려본다.
바로 옆에 있는 남덕유산으로 가는 길은 왜 이리 푹 빠졌는지? 은은한 능선이면 더욱 내가 이뻐해 줄텐데...에이구~~~ 또 걷자.
헬기장에서 내려가는 계단이 꽤나 가파르다.
삿갓봉이 여기서는 별로인데 실제로 가깝게 가면서 느낀 것은 에베레스트 산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그 산 같다.
무룡산도 그렇고...
여기서 부터 삿갓봉까지 제일 클라이막스 구간같다. 그 다음은 완만한 오름길. 그냥 Smooth 하게 올랐다.
▲서봉에서 본 향적봉과 남덕유 주변. 머~~네. 향적봉까지 보니 까마득하다.
키로수는 한 번 해볼만 한데 걸어보니 고행 길. 여기에서 또 스스로 중얼그렸다. " 내가 왜 이 짓을 할까? "
▲ 남덕유를 오르다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다.
여기서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500m 전진. 후 잃어버린 것을 알고 다시 배낭을 벗어놓고 후진.
어디서 잃어버린지 기억도 없고 마냥 내려가다 내가 중요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찾는 좋은 분.
가톨릭 성인 ' 안토니오 성인' 을 불렀다.
(가톨릭의 안토이오 성인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성인이시다.)
이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몇 초 되지 않아
어디선가 귀에 익은 폰벨이 울렸다. 조용한 산 속에서 ...
모기소리 나는 곳까지 겨우 찾아가서 휴대폰을 찾고 온 전화번호를 확인하니
대출전화 였다.
세상에~~ 이런 일도.
▲1. 이 지점이 남덕유산 정상과 삿갓봉과의 갈림길이다. 남덕유산 정상까지는 100m. 100m도 귀찮다.
인내심이 없다는 걸 절실히 느낀 구간임
2. 삿갓봉의 위엄이 또 눈 앞을 가로 막는다. 와~~. 사실 걸어보니 삿갓봉 꼭대기로 가는게 아니라 정상 부근의 옆 길로 길이 나있다.
이 길을 처음엔 누가 냈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든다. 참 용감한 선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사냥꾼과 마을 주민들이 조금씩 다니며 길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이걸 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직접 열어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궁금했다. 시설물이라 그러면 안되겠고.
< 안내문 >
본 장비를 긴급 구조물 통신장비이며
위급상황 시 조난자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평상시에는 사용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사용법> 이 더 가관이다.
1. 어쩌구 저쩌구 해놓고 KTF 가입자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옛날 KTF 가 KT에 합병했는 것으로 아는데 과연 이 시설이 KT 휴대폰 가입자만 사용이 가능하도록 해두었는지가 궁금했다.
여름철에도 그렇지만 특히 겨울철 조난시 이 시설을 이용하려면 KT 가입자 이외는 사용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도 있는데 가입자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KT가입자가 아니면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는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똑 같은 이야기이다.
물론 시설물 설치에 예산과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음은 인정을 하겠지만, 그건 산 아래에서 행정기관과 협의후 정리 정돈을 해야하는 문제이고 산 위의 위급시는 그런게 아니다.
결론은 위급시 누구나 이 시설을 모두 사용이 가능토록 해두어야 한다.
2. 설비를 한 업체도 이런 곳에 시설을 해두고 모든 사람이 사용케 하고 박스 아래에 조그맣게 회사이름과 함께 홍보물을 집어 넣어 놓으면 더 좋은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을텐데 아쉽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 만한 판단력이 없을까?
당장 시정해야 할 부문이다. 남덕유산에서 향적봉까지 두 군데의 똑 같은 시설물이 있었다.
▲삿갓재를 지나 지나온 길을 돌아다 본다. 내 삶의 뒤안 길도 같이 조명해 가며...
▲1.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하자 곧 바로 약수터에 달려갔다. 대피소에서 약 100m 정도 아래로 내려가는데 왠 100m 가 이렇게 긴지.
2. 대피소에 이런 것도 있다. 이온음료! 한 방에 갈증이 해소되었다. 가격은 1,500원
또 일단은 '먹고 보자~!'
▲1. 이 번 산행중에 느낀 건데 고산지대에 왠 잠자리가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개체수가 많다는 것은 먹이가 많다는 이야기인데 주로 모기,파리등 날아다는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 잠자리라고 하는데 이곳에 먹거리가 많은가 보다.
먹이사슬의 관계상 잠자리가 많으면 거미도 있어야 하는데 거머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새들이 잠자리를 먹나 모르겠다.
2. 대피소의 화장실이다. 또 궁금증 발생--> 재래식 화장식인데 오물이 모이면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겠다.
지상으로 공수하는지. 자연부패 형태로 분해해서 나무의 거름으로 사용하는지.
▲저녁이 되니 대피소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삿갓재 대피소에 대해 몇 가지 적을까 한다. 물론 잘 되자고 하는 소리겠다.
우선, 대피소의 구조가 잘못되어 있다. 한 여름에 대피소 내부의 뒤편은 폐쇄가 되어 있어 공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더운날씨의 한 낮에 대피소 내부는 한증막이다. 뒤편에 공간을 내야한다.
왜 이렇게 지은지 뒤편에 가서 생각해 보니 하고 공사하고 증축을 하고, 또 필요한 부문이 있어 증축을 하고 해서 그런 것 같다.
설악산의 대피소( 최근에 지은 소청 대피소)와 견주어 보면 많이 뒤떨어진 시설이다.
오후에 이곳에 도착해서 묵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위에 머무를 곳이 없다. 실내도 그렇고 더구나 실외도 그렇고..
1층의 뒤편의 여성 탈의실 뒤편에 공기구멍을 내줘야 하는데 왜 이런 구조로 만들어 놓았는지 고개만 갸우뚱 거릴 뿐.
▲1. 대피소의 입구 / 오른쪽에 신발장.
2. 남녀 공용이며 실내의 모습이다.
▲1. 침실은 이렇게 되어 있다. 딱 1인용으로 나무 위에 가서 눕는다.
2. 이층에 올라가 봤는데 통 침실로 만들어져 있다.
▲1.하루 숙박비가 10,000원(하절기), 11,000원(동절기)이다.
2. 화장실의 모습
▲1. 대피소의 외부의 모습이다. 왼쪽으로 가면 삿갓재, 오른쪽으로 가면 향적봉
2. 혈압계가 있다. 혈압 측정해서 등산의 계속 유무를 각자 판단을 해서 걸어라라는 뜻일까?
비상시에는 어떻게 할까?
설악산 중청대피소에는 자동제세동기(심장마비 발생하는 환자 긴급 동기)가 설치되어 있다.
1. 대피소에서의 새벽잠은 왜 이렇게 없을까? 새벽에 출발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선다. 반대편으로 출발하는 팀도 있다.
2. 또 혼자서 깊은 산에 들어가려니 사실 좀 움찔하다. 나도 심장이 꽤나 강한 편인데도....
내 앞에 두 사람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 따라가려고 했는데 흔적이 없다.
무룡산 가기전에 일출을 맞는다.
이슬을 머금은 산. 이런 걸 두고 공기가 맑다고 하는가 보다.
앞에 보이는 산은 무슨 산인지 모르겠다. 일출을 보기위해 잠시 걸음을 멈춰본다.
▲동쪽으로 구름의 양이 많아 한참 후 해가 구름 위로 떠 오른다.
▲무룡산 능선인가 보다. 훤하니 보기에 좋다.
▲또 내가 제일 자신이 없는 꽃이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알던데.
더구나 한 번 들어도 잊어버리는 묘한 나의 머릿속.
▲이 꽃은 많이 봤는데 누군가에게 이름을 듣긴 들었는데 잊어 버렸다.
▲뒤를 돌아다 본다. 왜 이렇게 뒤를 돌아다 볼까? 통장 잔고 드려다 보는 느낌? 이다.
▲아~~ 향적봉이 멀잖았다. 왼쪽이 향적봉.
▲빨강표시가 서봉이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사진 한 컷 주문했다.
▲한쌍의 연인이 능선을 걷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의 인증샷을 찍어주신 분들인데 가까이서 보이 선남선녀이고 마음씨도 곱다.
▲향적봉 옆의 중봉에서 삿갓재 방면으로 가는 능선 길인데 위에서 보면 아름다운 길이다. 겨울철 설경이 아름다울 것 같다.
▲주봉 부근의 고목들. 저 정도면 뿌리도 상했을텐데 서 있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주봉에서 본 향적봉/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띈다.
▲향적봉의 관광객들/ 저 봉우리 넘어 케이블 카가 있다.
▲향적봉에서 본 남덕유산과 서봉/ 저 멀리 가운데 두 봉우리가 그것들이다.
▲향적봉 아래의 케이블 카/ 저곳까지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고 내려가고 한다.
▲수녀님들도 올라오셨네요.
▲향적봉에서 백련사까지의 내림 길은 가파르다. 평지가 없고 제법 지루한 산행 길이다.
사진 촬영할 곳도 없고....백련사 가까이에 오니 '계단(戒壇)'이 있다.
이 계단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이 아니라 불교의 계법을 전수하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선덕여황 12년(643년), 불경 연구를 위해 당나라에 다녀온 자장스님이 지금의 통도사인구룡연에 금강계단을 만든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자장스님은 이곳에 당에서 가지고 온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한 후 불교의 계율을 설법하였다고 한다.
이후로는 전국의 큰 사찰마다 계단을 설치하고 승려들의 계율의식을 행하였다.
백련사는 신라 신문황(681~691)때 백련스님이 은거하던 곳으로 하얀 연꽃이 피어나 절을 지었다고 하며 구천동 열네개의 사찰중
유일하게 남은 유서 깊은 사찰이라 한다.
▲1. 내려오니 바로 백련사가 보이는데 첫인상은 한적한 느낌과 사찰의 규모에 비교해 일손이 많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백련사는 명승지 구천동을 대표하는 절로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숨어 살던 곳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여기서 백련이 솟아 나와서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 절터에서는 광무 4년(1900)에 이하섭이 고쳐 지으면서 기념비를 세운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전쟁 때 건물들은 불에 타 없어졌으나, 경종 3년(1723)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백련사의 종은 자리를 옮겨 두어 남아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62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대웅전은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이외에도 선수당, 원통전, 사천왕문, 일주문 등이 있으며, 백련사 계단을 비롯하여 정관당부도, 매월당부도가 있다.
(자료: 문화재청 참고)
2. 샘물이 있어 다가가 마셔보니 맛이 괜찮다.
▲백련사의 대웅전
▲1.사천왕문을 지나 '우화루'이다.
2. 사천왕문
▲백련사 대웅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정곽당 곽일선 스님의 부도가 있다.
불교의 선풍(禪風)을 전하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고 적혀있다.
'선풍(禪風)'의 뜻을 잘 몰라 찾아보니
'선풍(禪風)'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불교의 조사들이 선지식을 크게 떨치는 일이라 한다.
선풍(仙風)은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고 산속에서 명리를 초탈하여 자연 본래의 사물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정곽당 곽일선 스님의 부도
▲백련사에서 구천동으로 내려오는 길은 길이가 약 5.7Km정도 이고 상당히 멀다. 향적봉으로 내려오면 걷는 것이 지겨울 정도로
길다. 계곡을 끼고 걸어나온다.
▲중간에 너무 더워 잠시 계곡으로 잠입? 했다. 정말 물이 얼음장 처럼 차가웠다.
▲1. 백련사에서 구천동으로 조금 내려오다 보면 부도가 또 있다.
이곳은 매월당 부도가 있는 곳이다. 매월당 설흔스님은 정조 8년(1785년) 백련사에서 생을 마칠때까지 이 지역 불교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분으로 안내판에 기록이 되어 있으며 사진에서는 가운데 부도가 설흔스님의 부도이다.
2. 백련사 일주문(一柱門/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이다. 단청이 많이 훼손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판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면 "덕유산 백련사" . 탄허스님 글씨로 알려져 있다.
▲백련사의 안내도
▲1. 백련사에서 한참을 내려오니 왼쪽에 양식장이 있고 조금 더 내려오면 여기 양식장에서 키운 송어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이
있다. 치어가 없는 것으로 봐서 다른 곳에서 미리 키워 이곳에서 영양보충을 해서 판매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은 정말 좋은데...
일전에 타지역에서 송아지를 사서 강원도 횡성에서 키우면 강원도 횡성의 한우로 할 것인지 아닌지의 신문기사 내용이 생각났다.
▲구천동에 내려오니 큰 수호비가 보인다.
수호비에 씌인 내용들을 읽어본다.
▲1.구천동에 많은 관광객이 피서를 즐기고 있다. 구천동 탐방 안내소 위쪽은 피서가 안되는데 이유는 상수도 보호지역이라서
그렇단다.
2. 탐방 안내소이다.
▲1. 구천동에 내려와 막국수 한 그릇을 시킨다. 바가지 요금은 어디나 마찬가지 인듯 하다.
눈에 보이는 낡은 방법으로 내 주머니를 노린다. 시킨 것은 15,000원 인데 사람들이 많이 분비는 탓을 이용해 16,000원을 달란다.
젊은 분인데 모르고 그럴리가 없는데 아주 얇팍한 카드를 내게 낸다.
막국수 곱배기 10,000원/ 구천동 막걸리 5,000원
( 조금더 내려와 마트에 들려 막걸리 한 통 값을 물어보니 1,500원 이란다. 자리세를 포함해서라도 조금 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부문에 대해서는
나도 관광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각각의 영업하는 업체의 조그마한 불친절과 바가지 행위는 제살을 갉아먹는 행위임을
업체주인이 스스로 깨달아야할 부문이 아닌가 싶다. 행정에서의 지도도 한계가 인는바, 바가지 요금은 순간적으로는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임을 내가 사는 울진에서도 그렇고 대한민국의 모든 관광지에서 영업하는 모든 사람들이
깨달아야할 부문이다.
2. 갑자기 폭우가 몰아친다.
▲1. 폭우 때문에 더 이상 일정을 소화할 수 없다. 비를 맞아 몸은 생쥐같고 해서 민박집에 하루 쉬고 가기로 하고
다음날 일찍 마트에 들려 도시락 맛도 볼겸해서 렌지에 데워서 한 번 먹어본다.
2. 구천동 버스터미널은 따로 없고 왼쪽 가요방 간판 옆에서 버스가 선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대전까지 올라가서
KTX를 타고 포항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 다행히 서울에 있는 나의 절친이 KTX 예매를 바로 해준다.)
▲ 대전행 직행버스를 탔는데 손님은 나 혼자/ 버스 앞 백미러 옆에 작은 구멍이 나제통문이다.
그 옛날 신라와 백제가 물물교환을 위해 서로 다녔다고 하는 문이다.
▲1. 가운데 구멍이 나제통문이다.
2. 대전 복합터미널에 도착을 했는데 규모가 크다.
▲포항행 KTX 표를 끊고 잠시 대전역 광장으로 나가본다.
' 대전 블루스' 노래비가 있는데 비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노래말 속에 그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가사라 속으로 한 번 읊어본다.
▲1. 역 앞에 저렇게 누워 있는 사람도 있다. 이 폭염에 삶에 지쳤는 모양이다. 한참을 서서 생각에 젖어본다.
2. 대전역의 또 다른 방향으로 나가 본다. 택스 승합장 부근이다.
▲1. 수 십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전의 빵 회사 " 성심당" 이다. 수 십년 동안의 한 길 사업.
돈 되는 사업이라면 문어발 사업으로 확장하는 회사와 대비되는 회사이다. 여기 역사내에 상점이 있다.
2. 역사내
▲1. 기차를 기다리는데 비둘기가 이렇게 사람에게 다가온다. 먹거리가 있으면 무서움도 없나 보다.
2. 티켓을 구입을 했다. 티켓을 예매해준 서울에 사는 절친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 고마워~~~"
30,800원( 대전--포항)이다.
▲1.역사내의 성심당 빵집에 들어갔다. 분위기를 보니 파리###와 유수 빵 보다 더 먹음직 스럽다. 방무제도 없다하고 친환경 제조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 " 일단은 먹자~! " 몇 개 샀다. 열차안에서의 간식을 위해 샀는데 열차를 탈때 보니 빵은 어디론가 증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정한 목적지로 향한다.
그 위에 ' 나가는 곳'의 안내판을 보니 우리 사회에 우리가 정한 규범과 룰에 대해 생각해 보며
그 룰에 어긋나게 행동해서 생기는 많은 사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역사로 나가 열차플랫폼에 들어오는 KTX를 본다.
같이 이웃하며 만나지 않고 늘 평행선을 달리는 누워있는 선로.
▲열차의 플랫폼을 보면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2. 객실에 비치된 KTX 안내 책자를 펼쳐보기도 하며 포항까지 냅다 잘 달린다. 처음 타본 KTX 이다.
대전에서 포항까지 정확하게 1시간 18분 걸린 것 같다. 빠르긴 빠르다.
▲1. 열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농촌풍경을 눈에 담는다.
2. 포항역에 도착을 했다. 신역사라서 역사 주변에 별로 편의시설과 건물들이 없다. 역사 안에는 몇 개의 편의용품을 파는 곳이 있고.
▲1. 화장실 소변기를 내려다 보니 파리 한 마리가 있다. 파리의 크기와 똑 같은 모형의 그림인데....
정확히 조준을 했는데 어찌 죽지를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 같다.
2. 포항 KTX 역사안
▲1. 역사를 나오니 현대식 건물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2. 역사 앞에는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정류장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 울진까지 가려고 버스를 기다렸는데 버스가
자주 안오는 것 같아 결국 포항 버스터미널로 이동을 했다. 시내버스 비용 1,100원 인가?
▲1. 멀리서 포항 KTX 역을 본다.
2. 이 번 여행은 여기서 끝이다. 못된 나를 만나 고생만 실컷한 나의 등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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