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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면]울진금강소나무 숲길 4구간/2016.8.27/9.7km

울진대왕소나무의 우람한 가지





  # [금강송면] 울진금강소나무숲길 4,5구간 / 너삼밭-대광천-아래새재-썩바골 폭포-대왕송-조령 성황사-
   너삼밭(원점회귀)/ 9.7km


- 일시: 2016.8.27(토)

- 일정: 너삼밭-대광천-아래새재-썩바골 폭포-대왕송-조령 성황사-  너삼밭(원점회귀)/ 9.7km

- 탐방자: 알비노 외 탐방객 10명(외지 손님)

- 기본설명

   울진금강소나무 숲길은 전부 5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4구간은 현재 운영되고 있으며 5구간은 조만간 오픈한다고 한다.

   4구간의 출발점은 금강송면 소광1리 마을회관에서 집합을 해서 도시락을 챙겨 다시 너삼밭으로 차로 이동한다.

  마을회관에서 너삼밭까지는 약 몇 백m로서 그리 멀지 않다. 이동은 각자의 자가용으로 이동을 하며 여럿이 한 대의 차에
  합승해서 이동하면
  좋다.


 4구간은 전문산악인 코스라 홈페이지에 설명이 되어 있지만 그렇게 고난이도의 등산로는 아니다.

 중급이상의 체력소유자라면 대왕송까지는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다. 대왕송 아래 부근에서 약 500m는 급경사구간이다.

 이 구간만 치고 올라가면 그렇게 힘든 구간은 없다.

 원래 4구간은 장군터까지 가야하는데 이날은 일행중에 기본장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신 분들 때문에 일정을 바꿔

 아직 개통이 되지않은 5구간의 일정구간을 거쳐 원점회귀했다.
 4구간에 대한 자세한 Posting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울진금강소나무 숲길은 전부 5개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제1구간: 두천1리-바릿재-장평-찬물내기(점심)-샛재-대광천-저진터재-소광 2리 주막거리 ( 13.5km)

  제2구간 (2-1구간) : 전곡리-쌍전리 돌배나무-큰넓재-한나무재-소광2리 (11km)

  제3구간: 소광2리(소광리 펜션)-저진터재-너삼밭-화전민터-오백년소나무- 화전민터-너삼밭-저진터재- 소광2리 (16.3km)

  제4구간: 너삼밭-대광천-아래새재-썩바골 폭포-쉼터-삼거리 분기점-대왕송- 장군터 (9.7km)
  제5구간: 두천1리 주막거리- 대왕송- 샛재 성황당- 찬물내기- 두천 1리 주막거리


  제5구간은 공사가 거의 완료된 것으로 아는데 조만간 오픈하는 것 같다.

  울진에 살면서 1구간과 3구간은 몇 번 다녀왔다. 둘 다 울진금강소나무 군락지와 보부상 길을 가는 길로서 의미가 깊은 길이다.

  특히 1구간은 울진금강소나무 숲길이 처음 시작된 구간이기도 하다.
  울진금강소나무 숲길은 옛날 울진읍과 북면, 죽변면의 어촌마을에서 봉화, 영주, 안동 등의 내륙지방으로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을 복원해 놓은 길이다.

  상당히 의미가 깊은 길이며 지금도 그 길을 걸어보면 거리도 그렇지만 코스가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실개천을 번갈아 걷는 
  스릴있는 길이다. 역사가 서려있는 길!

 그래서 길의 개통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으며 지금도 많은 탐방객들이 이 길을 걸으며 옛날 울진지역의

   보부상들의 발자취를 가름하곤 한다.


  가보지 않는 4구간을 며칠전에 예약을 하고 아침 일찍 소광리까지 차를 몰았다.

  도착시간은 8시 40분. 소광 1리 마을회관 앞이다.

  11명이 예약을 했다. 다른 코스는 점심을 마을에서 중간지점에 배달을 해주는데 이 구간은 점심먹는 구간이 산꼭대기에 위치해

  점심배달이 원활치 않아 출발지점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준다.

  탐방비용은 6,000원이다. 점심값을 포함한 가격이고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고 현지에서 현금으로 지불하면 된다.


  소광1리 마을회관에서 개별차량으로 더 진행한다. 몇 백 m 정도.

  너삼밭에서 출발을 해서 대왕송까지 군데군데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직행한다. 물론 몇 군데에서 쉬기도 하며....

  산 속의 계절은 여름과 가을사이에 왔다갔다 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산행에 그렇게 어려움이 없다. 며칠새 이렇게 온도가 내려갈 수 있을까?
  올 여름은 정말 더웠다.


  대왕송까지 가는 길은 별 의미가 없는 길 같다. 제1구간인 보부상길 덕택에 겸사해서 만들어 놓은 길!
  그런 길이 많다. 4구간의 특징은 그냥 산길을 걸으며  좋은 공기 마시고 자연과 벗하며 걷는 그런 즐거움.

  군데군데 원시림 구간이 눈에 띈다. 인간의 손과 발이 닫지않는 그런 길!

  이런 길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대왕소나무'!

  2년 전인가 국내이 유명한 사진작가의 비상식적인 행위로 구설수에 올랐던 그 대왕송이다.

  다름아닌, 대왕소나무 촬영을 위해 사진의 구도가 잘 나오지 않아 대왕소나무 주변의 금강송을 수 십그루 잘랐다.

  유명작가가 자기의 작품을 위해 인위적으로 주변의 나무를 자르고 자연을 훼손해 가며 남긴 작품으로 프랑스에서 전시회도

  개최하고,, 우리들은 아무 것도 모른체 그 작품의 우수성에 환호를 했었다.

  법원의 판결은 벌금 500만원.

  그 작가가 내다판 작품 한 점의 가격보다 못한 벌금을 받고 그후 언론에서 사라지더니 최근에 전시회한다고 야단이다.

  그런 소나무를 바라보며 한편으로 소리 소문없이 자연 그대로 두었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람한 가지의 근육질.

  소나무의 가지를 보니 정말 건강한 나무이다.

  유명한 나무를 보고 기념촬영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몫이다. 일행들의 사진촬영과 함께 데크에 앉아 대왕소나무를 배경으로

  점심을 먹었다.


  일행중에 산행이 힘든 분들이 있어 원래의 코스를 벗어나 아직 개통이 되지않는 5구간을 걷는다.

  해설사 이야기는 능선길(5구간)이 좋다고 하는데 바람이 불지않으면 제법 답답한 느낌이 드는 구간이다.

  능선길 양편으로는 잡목이 우거지고.

  대왕소나무에서 조령 성황당으로 내려오면 제1구간과 만나게 된다. 앞으로 5구간은 여기서 두천까지 거꾸로 걷나보다.

  숲길 1구간은 봄, 가을에 걸어봤는데 역시 봄철이 제일 걷기에 좋은 것 같다.

 여름과 가을사이의 시간을 여기서 만난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내 기분을 업 시킨다. 그래도 얼마전 새벽녘 설악산의 중청봉 주변에서 맞아본 바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땐 정말 좋은 바람이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일행중에 관광객들이 들고 다니는 무한정 노래가 나오는 오디오를 갖고 오신 분이 있었다.

  산 속에서는 역시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자연과 무언의 대화를 하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이고 산행인의 양식이 아닐까 싶다.

  유달리 말이 많은 어떤 분의 성격이 나와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발걸음을 빨리했다. 산 속에서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혼자서 자주 다니니 말할 상대도 없고 말 하면서 걸으니 어쩐지 에너지가 더 소모되는 것 같아서 이다.

 
  4구간은 조만간 다시 다녀올 계획이다.




너삼밭(출발점) -대광천-아래새재-썩바골 폭포-대왕송-조령 성황사- 너삼밭(원점회귀)/ 9.7km

원래 4구간의 코스는 대왕송에서 장군터로 이동하는데 이날 탐방객들에게 문제가 생겨 코스를 변경하여 진행함.










좌: 집합은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1리 마을회관 앞이다.  아침 8시 40분까지 집결을 해서 이곳에서 마을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챙겨 너삼밭까지 자기차량으로 이동한다.

우: 가을의 초입에서 고추따는 농부의 손이 바쁘다.







좌: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울진금강송에코리움이다. 여러가지 볼거리와 교육실 등의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우: 너삼밭까지 자기 차량으로 이동을 하는데 가능한한 각자의 차량으로 이동하지 말고 카풀로 한 차에 여럿이 나누어 타도록 한다.






입구에서 '후곡천'을 건넌다.

'송금숙' 해설사로 부터 야생화에 관한 해설을 듣는다.






우:
고사목 위에 붙은 이끼

후곡천을 따라 한참을 이동하면 초소가 나온다. 해설사들의 쉼터이기도 하며 대기실로 사용된다.






'송금숙'해설사로 부터 구간에 관한 해설을 듣는다. 이곳에 몇 개의 돌탑이 있다. .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의 갈림길은 1구간(두천- 소광리) 구간의 갈림길 이기도 하다.

이정표를 따라 이동을 한다. 진행방향의 오른쪽으로 오르면 된다.





이정표의 제목이 좀 이상하다. ' 친환경 숲길'이다.

'울진금강소나무 숲길' 내의 '친환경 숲길'이라는 이야기인지?

그냥 '울진금강소나무 숲길'의 작은 로고 하나와 '울진금강소나무 숲길'로 타이틀을 붙이면 되는데 왠 '친환경 숲길'로 표기를 했을까?

탐방로 전구간별 이정표의 동일성이 늘 문제로 남는다.





밤송이가 떨어져 있다. 계절은 가을로 접어든다.






이상한 풀에 대한 해설가의 설명이 있었다. 아주 작은 풀인데 해설가의 말로는 풀의 모습이 안경처럼 생겼다고 해서  
'도둑놈 안경풀'
이라고 하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정식 이름은 '도둑놈 갈고리'라는 풀이다.






좌: '썩바골 폭포'  라는 폭포인데 이름이 생소하다. 이름에 관한 유래의 자료는 없다.
다음에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봐야 겠다.

우: 군데군데 이름 모를 버섯들이 많이 피었다.





'썩바골 폭포'의 모습.  깊은 계곡에 있는 폭포로서 365일 물이 마르지 않을 것 같다.





'까마중 열매' 인지 모르겠다. 기관지에 좋다고 하는데 야생풀과 열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이름모를 버섯이다.






산에 다니다 보면 많은 나무 다리를 만나는데 나무는 역시 썩는다.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무로 계단이나 다리를 만들때

껍질을 벗겨 다리나 계단을 만들면 썩는 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이유는 습기를 머금는 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통나무로 해두면 역시 썩는 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





숲 속의 나뭇잎에 떨어지는 가을햇살은 봄, 여름햇살과 다르다.







오른쪽 구간이 얼마후 개장되는 5구간이다. 이쪽으로 약 1.5km 이동하면 '조령 성황사' 가 나온다. 1구간과 만나는 지점이며

5구간은 여기서 두천리 주막거리 까지 가게되는 코스.







대왕소나무 주변에 기형의 소나무들이 많다.






대왕소나무 주변의 갈림길( 장군터와 대왕송의 갈림길)이다.

원래 4구간은 장군터 방면으로 이동을 해야하는데 오늘은 사정한 5구간으로 걸었다.






대왕소나무













































말썽도 많았던 사진작가의 몸쓸 짓 현장이다.

대왕소나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니 주변에 있는 수령 수 백년의 또 다른 금강송이 자기의 작품(구도)에 방해가 되어 사람을 사다
잘라버린 현장이다. 작가는 '장**'씨

이에, 2011년 11월, 2012년 봄, 2013년 봄, 세 차례에 거쳐 울진군 소광리 산림보호구역에서 금강송 11그루, 활엽수 14그루를 무단 벌채한 협의로 2014년 대구지법 영덕지원에서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원에 처해지고
한국사진작가협회에서도 제명됐다
.

한 예술가의 욕심에 잘려나간 수 백년의 금강송.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에 환호했던 행정기관과 우리들.

반성할게 많다.


자기의 욕심과 목적을 위해 다른 것들은 무자비하게 희생을 해야한다는 그 작가의 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12일부터 26일까지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서 '미술과 비평'사의 주관으로 전시회를 가졌다.

이 전시회의 이익금으로 모 성당에 파이프 오르간을 사주고 싶다는 본인의 이야기.

하느님의 가르침 중에 하나는 용서이다.

하지만 이런 이익금으로 성당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으로 성가를 듣는 신자들의 마음은 편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파이프 오르간 설치후 신자들에 대한 장황한 설치와 후원에 관한 이야기가 아직은 없지만 생각해 보니 섬뜩한 생각마져 든다.


























산 위에서 먹는 점심 도시락

 울진금강소나무 숲길의 다른 구간에서는 점심은 점심시간에 탐방로에 직접 배달을 해준다.
4구간은 배달 장소가 마땅치 않아 출발점에서 점심으로 도시락을 배분해 준다.









울진왕피천 생태탐방로의 점심 도시락과 울진금강소나무 숲길의 도시락이다.

산길을 걷는 재미는 역시 자연경관의 감상과 나와의 묵시적 대화, 그리고 체력증진과 산림욕을 통한 힐링.

그리고 중요한 것은 먹는 재미를 빠뜨릴 수 없다.

산을 걸으면 체력소모와 함께 칼로리 보충의 의미와 자연을 배경으로 먹는 간식과 식사의 재미가 또 다른 산행의 의미를 더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울진금강소나무 숲길의 도시락의 퀄리티가 울진금강소나무 숲길의 상징 이미지에 좀 떨어진다.

6,000원짜리의 도시락의 질의 문제가 아니라 가격의 문제이다.

내 생각은 도시락의 가격을 10,000원으로 올려 반찬의 갯수와 질을 높이면  탐방의 의미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왕피천 생태탐방로의 도시락은 10,000원인데 도시락을 싼 정성도 정성이고 맛있는 가정식의 냄새가 물씬난다.


문제는 소수의 도시락을 장만하는 현지인의 불편도 생각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수 백명의 도시락을 저렴한 가격으로 준비하면 도시락의 질이 나아질수도 있겠지만 기껏해야 10명 안팎으로 도시락을 준비하는

마을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10,000원, 6,000원 짜리 도시락을 몇 개 준비하기에 짜증이 날 정도로 힘든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도시락 몇 개 팔아서 무슨 이윤이 남겠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6,000원짜리 10,000원짜리 도시락 몇 개 준비하기 위해 장을 봐야하고, 잠을 설쳐야 하는 현지인의 고충도 함께 생각해 봐야한다.


요즘 국내에 많은 곳에서 탐방로가 운영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는다.

이에 맞춰 10,000원의 하루 탐방로 비용 지출( 점심값 포함)을 비싸다고 할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울진금강소나무 숲길의 도시락과 점심의 가격을 10,000원 정도 올려서 양질의 도시락을 탐방객들에게 제공했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산길에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다.







아름드리 울진금강소나무에는 이렇게 GPS 표기가 되어있으며 산림청에 전수조사가 되어 있는 상태.

 굵은 나무에 노란 페이트질 해둔 것은 이미 국가의 부름을 받아놓은 금강소나무 들이다. 언제든 국가가 필요로 하면 어명에 따라 잘려나가게 된다.









5구간을 따라 (일정이 변경되어 4구간의 나머지 구간 대신에 5구간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면 '조령 성황사'로 내려오게 된다.

이 구간은 1구간과 겹치게 된다.














'조령 성황사'륻 드려다 본다.


#조령 성황사에 대한 자료/ 출처; 울진디지털 문화대전  http://uljin.grandculture.net/


샛재 성황사는 샛재 바로 아래에 있는 성황사로서 처음에는 부상(負商)들이,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선질꾼들이 십이령을 오가며 장사를 할 때 이들이 주도하여 제물을 준비하여 제를 지냈으며, 선질꾼들이 사라진 이후에는 빛내마을에서 제당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샛재 성황사 내에 걸려 있는 중수기나 성금 방명록 등을 종합해 보면 샛재 성황사는 조령 성황사·조령 성황당·조령 성황재사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1967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조치(鳥峙) 성황당(城隍堂)으로도 불렸다.

현재 샛재 성황사 내에 보관된 현판을 중심으로 연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령성황사중수기(鳥嶺城隍祠重修記)」에 따르면, 샛재 성황사는 1868년(고종 5)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처음 만들어진 것은 1868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행상임소(行商任所)·반수(班首)·접장(接長)·도감(都監)·본방공원(本房公員)·문서공원(文書公員)·별공원(別公員)·도집사(都執事)라는 직책이 있었다는 사실로 볼 때 십이령을 넘나들며 봉화와 울진의 장시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보부상단이 샛재 성황사 중수를 주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목수와 함께 ‘화공(畵工) 황순기(黃順基)’가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중수하면서 당신도(堂神圖)를 그려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령성황사개와시(鳥嶺城隍祠蓋瓦時)」[1878]에 따르면, 반수·접장·반수공원·본방공원·문서공원·성주도감·도집사·도공원·별공원·별임(別任)·장재(掌財)·수전유사(收錢有司)·칠읍도공원(七邑都公員)·도집사·대방(大房)·비방(俾房)이라는 직책이 나타나고 있어 이전보다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보부상단이 주도하여 개와(蓋瓦) 공사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88년(고종 25)에 성황사를 중수하였는데, 이를 기록한 현판에는 중수에 참여한 보부상단의 직책과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반수·접장·전함(前啣)·본방·도공원·성주도감·서기·유사(有司)와 함께 본소(本所) 및 삼장시(三場市) 소속 간부들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94년에 성황당 당신도를 바꾸었는데, 이를 기록한 현판에 따르면 화공 이치윤(李致潤)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보부상단의 조직과 관련한 각종 직책과 이름이 열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도 샛재 성황사를 중심으로 울진·봉화 지역 보부상단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십이령(十二嶺)’이라는 표기 하에 9명의 명단을 기재하였다는 것이다. 주막을 운영하던 사람들인지 각 고갯마루마다 책임자를 배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지역과 비교된다. ‘동몽(童蒙)’이라 표기한 후 5명의 명단을 적었는데, 이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조직원들이다.

1895년이나 그 이전 음력 10월 상순에 중수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조령이 십이령 중 제일 명산인데, 성황사 사우가 퇴락하여 매우 안타까이 여겨 새롭게 고치려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에 참여한 목수와 각수(刻手) 외 100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1916년 4월 20일에 샛재 성황사를 중수하였는데, '전공사원(前公事員)'·'전장무원(前掌務員)'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이외의 직책 명칭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보부상단이 해체된 이후에 성황사를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고, 중수와 관련한 총 66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현판에 기록된 김진호(金震浩)라는 인물이 ‘재소중수발기인(齋所重修發起人)’[1919년 4월 21일 제작] 첫줄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916~1919년 사이에 조령 성황 보호금을 모았음을 알 수 있다.

1919년 재소중수발기인 모임이 있어 성금을 모았는데, 재소중수발기인으로 총 45명의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1935년 4월 20일에 샛재 성황사를 중수하였는데, 성황사 내에는 성금을 기부한 사람들을 기록한 현판이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일본인 이름을 지닌 사람 1명이 기부자 명단에 있다는 사실과 여성들이 주무와 기부자 명단에 두루 등장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중수를 주관한 간부를 ‘주무(主務)’라 하였으며 성금을 낸 사람은 총 121명이다. 이 현판에 ‘조령성황재사(鳥嶺城隍齋舍)’라 표현한 것으로 보아 샛재 성황사를 보부상단에 참여하였던 선조들을 기리는 장소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48년 성황당을 중수하였는데, 성금을 기부한 사람들을 기록한 현판이 있다. 여기에 기록된 주무 최순여(崔順汝)와 김춘화(金春化)는 『조령성황재사중수시기부인방명록(鳥嶺城隍齋舍重修峕寄附人芳名錄)』[1935]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1961년에 중수하였는데, 주도한 간부들의 직책이 주무와 유사임을 알 수 있고, 주무와 기증자를 중심으로 그 명단을 기재한 현판이 있다.

1962년에 조령성황사영정(鳥嶺城隍祠影幀)을 봉안하였다. 당시의 샛재 성황사의 당신도 봉안을 주도한 주무·유사와 함께 영정을 그린 화사 이택룡(李澤龍),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현판이 있다. 현재 샛재 성황사 건물 내에 1983년 중수하는 과정에서 쓴 상량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건물은 1983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현령 이광전영세불망비이다. 업적을 널리기려 세웠다.













새로만든 나무다리























군데군데의 돌다리를 건너는 재미도 크다.













도로를 따라 원점 회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