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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해파랑길

해파랑길15,14,13코스.1(독수리바위,호미곶해맞이광장,삼정3리,구룡포해수욕장,구룡포, 양포)/40.6Km

#해파랑길17,16,15,14,13코스.1
(독수리바위,호미곶해맞이광장,삼정3리,구룡포해수욕장,구룡포, 양포)/40.6Km
 

■ 탐방 일자: 2021년 9월 20일(월)~21일(화)

■ 탐방자: 알비노 단독

■ 구간 : 독수리바위,호미곶해맞이광장,삼정3리,구룡포해수욕장,구룡포, 양포)
▶ 주의: 해파랑길 구룡포 부근의 구간은 일기예보에 꼭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구간별로 파도가 심하면 휩쓸릴 우려가 있는 구간이 많습니다. 파도가 심할 때는 절대 입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후기

해파랑길 15코스 출발점인 흥환 1리 민박집에서 둘째 밤을 지내고 새벽 일찍 배낭을 챙겼다.
아침의 시작인 새벽!  새벽이라는 말은 늘 들어도 기분 좋다.
수 억겁의 시간 동안 어김없이 어둠을 밀어내고 찾아오는 새벽.  
호미반도 동쪽의 일출과 함께 해변의 새벽 바다 공기는 더없이 상쾌하다. 말이 필요 없다.
철썩철썩 파도소리와 함께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모르는 바닷바람은 내 머릿속에 고여있는 찌꺼기들을 몽땅
씻어내는 듯하다.
 
첫차에 몸을 싣고 어제 마지막 구간인 '대동배 마을'로 이동했다.

마을버스를 타니 국도가 아닌 마을 마을의 사잇길을 곡예를 하듯 잘도 빠져 다닌다.
인구 감소로 인해 농어촌 마을에는 시내버스가 다니는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마을버스가 다니는 곳이 많다.
작은 미니버스.
돌아다녀 보니 내가 사는 울진을 포함한 대다수의 농, 산, 어촌 마을의 버스가 거의다가 작은 미니버스다.
그것도 운행시간 간격이 짧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간격이 크다.  버스를 놓치면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흥환리의 마을버스 운행시간 간격은 평균 50분.
마을버스 운행시간이 더딘데 비해 그나마 제주도에서의 시골마을버스 이용은 편했던 것 같다.

어촌의 마을의 아침은 사람들이 분주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조그만 어촌마을도 주민들이 몇 되지 않아서
인지 밤을 새운 낚시꾼들만 몇 명 보인다.

 

해변길을 걷다 산으로 올라섰다. 무슨 산인지 모르지만 높지 않은 동네산이지만 새소리, 곤충소리만 있을 뿐 인기척이라고는 없다. 산속에 혼자 다니는데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별 탈 없이 숲 속으로 걸어갔다.
이곳에도 멧돼지란 놈이 군데군데 산을 많이도 파헤쳤다.
발자국을 보니 머문 지 얼마 되지 않는 흔적이 눈에 띈다. 혹시 몰라 혼자서 큰소리 내어 헛기침을 여러 번 해본다.
경험으론 멧돼지는 소리에 민감해 먼 인기척에도 도망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걷는 도중에 오래전에 동네 주민이 심어 놓은 듯한 밤나무 앞에 섰다. 밤이 많이 열렸다.
갈길이 멀어도  밤 줍는 재미를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밤에 대해서는 어릴 적 추억이 많다. 학창 시절, 울진읍 달동네 부근에 작고하신 부친은 경작지 부근에 밤을 몇 그루 심었는데 바싹 마른 대나무 장대로 밤나무를 후려치다 밤송이가 머리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일이 있었다.
어릴 적 육체적으로 아픈 사고도 세월 앞에서는 아프지 않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주머니에  큰 알밤이 제법 가득 찼다.
걸으며 한 개씩 한 개씩 껍질을 벗겨가며 밤 까먹는 재미 또한 크다는 사실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숲을 지나 '대동배 2리' 마을 어귀에 도착하니 아침이 훨씬 지났다.

예전에 걸어온 북쪽 영덕군의 해맞이 공원 쪽이 희미하게 보인다. 돌아보니 그동안 많이도 걸어왔다.
이제껏 한 번도 와보지 못한 호미곶에 대한 호기심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흥환리의 바다는 조용했다.
며칠을 지내는 동안 새벽과 밤으로는 파도소리 밖엔 들리지 않았다. 숙소 앞으로는 낚시꾼들이 몇 비박을 하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포스코의 모습이 보인다.

 

 

 

 

 

 

 

흥환리에 있는 마트와 식당이다.
마트는 2개가 붙어 있었으며 오른쪽에 있는 '포항 해파랑 맛집'은 주로 장어를 재료로 한 음식을 판매하는데
하루 장어탕을 먹어봤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해안길을 걷다 대동배교회 건물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여기서부터 당분간 기분 좋은 산길이다.

 

 

 

 

 

 

 

 

길옆의 우물.
잠시 걸음을 멈춰 고개를 들어 밀어 봤다.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옛날에는 동네 아낙네들의  이야기 나눔 방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우물.

 

 

 

 

 

 

 

 

한참을 올라간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단지 새소리를 포함한 자연의 울림 밖엔.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가을에 산길을 걷다 보면 밤을 줍는 경우가 제법 있다.
늘 밤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밤나무 아래엔 벌써 많은 산 손님들이 밤을 줍다간 흔적들이 눈에 띈다.
떨어진 밤송이를 발로 밟아 허리는 굽혀 알밤을 줍는다.

알밤을 줍는 재미가 어쩌면 새벽녘 암탉이 낳은 달걀을 둥우리에서 꺼내는 재미와 같다.

10분쯤 주웠을까?
양 주머니가 가득하다. 걸으며 알밤을 까먹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다.
텁텁한 알밤의 껍질째 입안에 넣고 뽀드득 깨무는 재미가 고인이 된 지 오래된 삼촌과의 추억을 불러온다.

 

 

 

 

 

 

 

여기까지가 산길이고 또다시 아스팔트 길 해변길이 시작된다.

 

 

 

 

 

 

 

 

호미곶이 멀지 않다.
영일만 저 건너편 먼산이 보이는데 분명 저곳을 걸어왔는데 분간이 잘 안된다.

 

 

 

 

 

 

 

 

해안의 시설물들은 편해서 좋은데 철구조물이라 부식되는 점이 아쉽다.
유지보수 비용도 많이 드는 게 흠이다.

 

 

 

 

 

 

 

 

영일만의 전경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같이 내 마음도 시원해지는 듯하다.

 

 

 

 

 

 

 

 

오른쪽 먼산이 보인다.
영덕 축산항 부근인 듯하다. 

 

 

 

 

 

 

 

 

원양어선
평소에 원양어선을 보면 배안에 한 번 들어가 봤으면 하는데 기회가 없다.
없는 게 없겠지.

 

 

 

 

 

 

 

 

 

 

 

 

 

 

 

 

 

이곳 호미곶이 고향인 시인의 고향사랑에 관한 시 같다.
죽어서 멀리 가지도 않고 내가 태어난 고향 분월포에서 분월을 무시로 안아보는 늙은 그림자 비탈에서
영생을 누리겠다는 내용
----------------

나 죽어서 - 서상만-

나 죽어서 분월포에 가야 하리

천천히 걸어서 대동배로 가든지

호미곶 등대불빛 따라가다 보리능선 질러가는

구만리 밖 내 사라질 빈자리

거기 찰박찰박

바닷물도 달빛도 끌어당겨

비벽으로 출렁이는 곳

다 떠나고

아무도 그곳에 살지 않아도

저녁이면 치자빛 노을을 품고

덧없이 홀로 앉아 밤하늘 분월을 무시로 안아보는

나 꼭 돌아가

그곳에 늙은 그림자 비탈에 뉘 일터

 

-약력-

-1941년 경북 포항 호미곶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수학.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학.

-1962년 『한국문학』 등단.

-시집 『시간의 사금파리』『그림자를 태우다』 』『모래알로 울다』

-월간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수상

 

 

 

 

 

 

 

 

 

 

 

 

 

 

 

 

 

 

농. 어. 산촌에 폐가가 늘어간다.
인구감소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다니다 이런 폐가를 보면 내 마음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집의 모습으로 봐서는 이 집의 마지막 주인은 연세가 드신 노인분 같다.
오래전, 남편이나 아니면 부인중 한 분은 돌아가시고 남은 한 분이 바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다 몸에 병이 들어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의 보살핌을 마다하고  세상을 하직한 그런 사연을 간직한 집은 아닐까?
나름 짐작을 해본다. 내 짐작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집의 모습으로 봐서는 소박하게 사신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카페 'Belmare'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분위기가 괜찮은 것 같다. 파라솔과 바다, 그리고 건물이 잘 어울린다.

 

 

 

 

 

 

 

포토존

 

 

 

 

 

 

 

 

쾌응환호 조난 기념비

일본이 청·일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이 본격화될 무렵 당시 1907년 9월 9일 일본수산상습소 실습선인 쾌응환호(137톤급)가 수산시험(해류, 어족 분포, 연해 수심 등 조사)을 위하여 동해안에 내항하였다가 구만 2리 앞 해중에서 좌초되어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조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일본의 압력으로 바위와 파도 및 조류가 심한 교석초 앞에 해상안전을 유인하는 수중 등대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926년 9월 9일 당시 그 배의 승무원과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이곳에 ‘수산강습소실습선쾌응환조난기념비’를 세워 해마다 참배를 하여왔으나 해방 후 현지 주민들이 이 비를 훼손하여 방치해오다가 1971년 10월 재일교포 한영출의 주선으로 방치되었던 비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출처:포항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독수리 바위

 

이 지역은 풍파가 심하면 고기(청어)가 밀려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까꾸리(갈고리의 방언)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으로 '까꾸리개'라 부른다. 독수리바위는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조각된 바위의 형상이 독수리의 부리를 닮았다 하여 주민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호미곶의 땅끝인 이곳에서 서쪽으로 지는 석양의 노을은 대흥산 너머에서 비추는 낙조로 층층의 산과 시가지, 특히, 어링이불의 포스코 굴뚝을 선명하게 나타내게 하는데 그 화면이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절경으로 언론, 방송사 등 많은 사진작가들이 작품사진을 찍기도 한다.

 

 

 

 

 

 

 

 

 

 

 

 

 

 

 

걷다가 잠시 하늘을 본다.
잠자리 같이 보이는 이것은 모터패러글라이딩.
어디 동우회 같이 보인다.
스릴은 있지만 안전이 문제일 것 같다.

 

 

 

 

 

 

 

 

 

 

 

 

 

 

 

 

 

호미곶항 

 

 

 

 

 

 

 

 

어촌 항구의 모습
어지럽게 보이는 것 같지만 물건 하나하나마다 어부들의 쓰임새가 있을 것 같다.
지저분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내 눈에는 익숙한 모습이다.
가끔 어촌마을을 들릴 때마다 항구에 들러 어부들의 삶을 짐작해 본다.

 

 

 

 

 

 

 

 

호미곶항

 

 

 

 

 

 

 

 

 

 

 

 

 

 

 

 

'쌉작 거리'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다.
울진에서는 '삽지 거리'라 불렀다.
대문 밖 도로변이라는 뜻이다.

 

 

 

 

 

 

 

 

 

 

 

 

 

 

 

 

 

호미곶에 도착했다.
조형물 이름은
'희망의 해돋이'
조형물의 모습으로 봐서는 희망을 의미하는 듯하다.

 

 

 

 

 

 

 

 

 

 

 

 

 

 

 

 

 

문어의 조형물
조형물이 재미있고 밉지가 않다.

 

 

 

 

 

 

 

 

상생의 손

인류가 화합하고 화해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조각물.
바다에는 오른손이, 육지 쪽 광장에 있는 손은 왼손이다.

영남대학교 김승국 교수 제작

 

 

 

 

 

 

 

 

 

 

 

 

 

 

 

 

 

 

 

 

 

 

 

 

저런 오토바이 한 번 타봤으면 좋겠는데.
오래전에 오토바이 사고를 한 번 당했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 오토바이 근처에도 가기 싫었다.

 

 

 

 

 

 

 

육지는 오른손. 바다 쪽은 왼손

 

 

 

 

 

 

 

 

코로나 상황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나왔다.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참쌀이 들어간 풀빵과 커피 한 잔.

 

 

 

 

 

 

 

 

 

 

 

 

 

 

 

 

 

구룡포와 호미곶 해변에는 유달리 양어장이 많다.
바닷물을 끌어오기 위해 이런 노력도 한다. 

 

 

 

 

 

 

 

 

길을 걷다 눈에 띄는 비석 하나.
길에서는 백비(白碑) 모습으로 보여서 이상하다 싶어 뒤로 돌아가 보았다.
1988년 수중 탐사활동 중 안전사고로 숨진 故김민지 씨와 관련된 비석이다.
아래는 보이 비석이 파여 있다.
원래는 이 비석을 설치한 분들의 이름이 들어갈 자리.
이승에 있는 사람들 이름을 잊고 하늘나라에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서 그럴까?

 

 

 

 

 

 

 

동네 마을 팔각정에서 잠시 휴식.
다방에서 차를 시키면 차와 함께 갖다 주는 물이다.

 

 

 

 

 

 

 

 

여러 곳을 다니다 보면 지자체별로 쓰레기 수거 방법이 조금 차이가 있다.
내가 사는 울진도 쓰레기 문제로 골치를 앓는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쓰레기 수거 정책을 펼쳤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울진의 쓰레기 수거 정책.  나도 그동안 울진의 쓰레기 수거 방법에 관심이  많아서 인지 금방 눈에 들어온다.
포항의 쓰레기 수거 방법은 두 가지.
가연성(타는 것)과 불연성(타지 않는 것). 두 가지로 수거한다.
분리수거 시 주민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것은 종류별로 분리하는 것이 귀찮고 힘들다.
이곳은 두 가지로 분리하니 분리가 간편하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우선 버리는 사람이 편하다.
괜찮은 방법 같다.

 

 

 

 

 

 

 

 

 

 

 

 

 

 

 

 

성혈(性穴)바위
선사시대 그 이후 신앙과 관련이 있는 바위인듯하다.

 

 

 

 

 

 

 

동쪽 땅끝마을 석병리
액자 안에 배가 한 척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