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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청산도 슬로길(완)

청산도 슬로길( 9~11구간)/정골꼬랑,지리청송해변입구, 도청리뒷등길 ,도청항/7.1Km

● 구 간 : 청산도 슬로길( 9~11구간)/정골꼬랑, 지리 청송해변 입구, 도청리 뒷등 길 , 도청항/7.1Km

             - 9구간: 정골꼬랑-지리 청송해변 입구 /3.2Km
            - 10구간: 지리 청송해변 입구-도청리 뒷등 길 /2.7Km
            - 11구간: 도청리 뒷등 길 도청항 /1.2Km
● 일 시 : 2021년 2월 13일(토)
● 걸음이 : 알비노 단독
● 여행기간 중에 코로나 방역수칙을 준수했습니다.
● 자료
- 구간 gpx :

 

 

청산도 슬로길 걷기 3일째다.
내륙에서 수 십 년을 살아온 나에게 사방팔방이 바다 한가운데 섬에서의 잠자리는 내륙에서 생활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숙박업소의 주인부터 만나고 보는 사람 전부가 나 와는 초면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의 성격에 대해서도 나를 둘러싼 그 어느 것도 모른다는 것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편하게 얽힌 사람도 없고 좋은 감정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도 없으며, 해외여행보다는 생소한 것이 적지만 그래도 신기하고 평소에 내가 자주 접하는 환경과는 달라서 그런지 마음은 편했다.

청산도에서의 숙박도 그렇지만 식당도 변변찮다.
모델도 그렇고 펜션도 깔끔하게 모든 게 잘 갖춰진 그런 숙박시설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격도 그렇게 많지 않고 잠자리가 결코 불편하지 않은 그런 숙박시설이었다.
식당도 내륙에서와 같이 정식은 7,000원 정도이고 생선이 올라가면 10,000원대를 형성했으며
섬이라 회거리와 전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전날 끝점인 청산 정수장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다.
마을버스가 여객선 운행시간에 맞춰 청산도항에서부터 운행된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비정기적으로 운행했다.

여객선에 승객이 많으면 운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역주민인 할머니 한 분과 합승을 했는데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마지막 구간인 11구간을 끝내고 하루 정도 더 머물 예정이었는데
느림이 싫어서 일까?
숙소에 들어가 배낭을 챙겨 오후 늦게 배에 올랐다.

 

첫째 날 버스가 없어 콜 했던 대형택시다.
청산도에서의 교통은 상당히 불편하다. 섬 군데군데 매일 다니는 버스조차도 하루에 몇 번. 그나마 오후 늦게는 운행이 되지 않는다. 택시가 그 불편함을 해소해 주지만 실비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가격 부담이 있다.

3번을 탔는데  짐작에 청산도  섬 안에서는 거리에 따라 대충 12,000~20,000원 정도 될 것 같다.
택시 크기는 거의 다 대형 택시다.(카니벌 정도)
이유는 가족과 단체 여행객들이 많고 일정액을 받고 관광지 투어도 해주기 때문이다.
첫째 날 이후 3일간 3번 이용했다. 친절하고 운전도 잘하고 고향은 내륙인데 청산도에 산지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연락처: 010-3161-3816

 

 

 

 

 

 

 

 

국화마을 풍경

날씨가 흐려 먼데 섬이 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에 풍경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길 양편으로는 단풍나무가 심겨 있다. 제법 긴 거리에 심겨 있는데 가을철에는 장관일 것 같다.
안타깝게도 아스팔트 길이다.

 

 

 

 

 

 

 

 

사람도 차도 거의 없다. 더더욱 사람은 오랫동안 걷는 도중에 마을 주민 한 두 사람 이외는 눈에 띄지 않는다.
휑하니 빈 아스팔트 위,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만 옮겼다.

왼쪽에 수명이 꽤나 오래된듯한 단풍나무!
가을 단풍철에 여기를 걸으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아름다운 곳은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다.
작년 가을에 목숨을 다한 단풍잎이 섬바람이 그동안 심했을 것 같은데 일반 낙엽과 섞여 아스팔트 위에 나 뒹군다.
죽어서도 떠나기 싫어서 일까?
 도로 갓길을 걸어야 하기에 차 조심해야겠고. 

 

 

 

 

 

 

자연계에서 특히 동물의 세계에서  공존, 공생하는 동물들을 많이 봐왔다.
 공존과 공생은 두 종의 생물이 공존, 공생함으로써 서로 같이 이득을 얻는 경우다.
그 예로는 악어와 악어새, 개미와 진딧물, 말미잘과 흰동가리, 콩과 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 등을 들 수 있다.

국내 국립공원이든 관광지든 어디에도 쓰레기가 아무 데나 버려진 것을 많이 본다. 
세계적으로 휩쓸고 있는 자연재해.
원인은 인간이 자연과 공존, 공생의 원칙을 어기고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을 못살게 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 파괴된 자연으로 인해 먼 훗날 멸망으로 간다. 그렇게 되지 말아야겠지만.
자연을 보호하고 자연을 위하는 길만이 인류가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 수 있다. 


 

 

 

 

 

 

 

 

 

 

청산도는 마을이 많다. 특징은 작은 단위로 군데군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멀리서 봐도 가까운 데서 봐도 정겹고 아기자기하다.
'지리(池里) 마을'이다. 
자료에는 1640년 조선 인조 말엽 김해 김 씨가 처음 섬에 들어와 터를 잡았고 한다.
문향(文鄕)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지리해수욕장
아직은 겨울철이라 그런지 단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해수욕장 물이 맑지 않다. 매일 내가 사는 동해안의 푸른 바다만 봐서 그런지 남해안 물은 석회로 풀어놓은 듯 약간 탁한 색이다. 왼쪽에 소나무군(群)이라 여름철에 그늘에서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연인들끼리 데이트 장소로 좋을 것 같다.

 

 

 

 

 

 

 

 

지리해수욕장

 

 

 

 

 

 

 

 

멀리서 보니 '저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식장에서 사용되는 개량형 스티로폼이다. 
잘게 부서진 스티로폼을 물고기가 먹고 그 물고기를 인간이 먹고....
물고기 폐사 등의 방지용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아이디어가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전국을 다녀보면 묘지문화도 지역에 따라 틀린다.
청산도의 묘지문화는 분묘의 크기가 다른 지역보다 크고 비석과 상석 등을 만들어 놓은 묘지가 많다.
땅덩어리도 작은데 묘지를 왜 크게 하는지 무슨 이유가 있는 듯하다.
강릉 쪽도 분묘의 크기가 크고 청산도와 비슷한 형태이다.
서해안 쪽은 대체로 분묘의 크기가 작다.

 

 

 

 

 

 

 

 

밉지가 않는 풍경사진관이다.

 

 

 

 

 

 

 

 

남해안에 양식장이 많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섬을 중심으로 근해 전체가 양식장이다.
동해안은 파도가 치면 바닷물의 빠짐이 좋은데 서해안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주로 전복 양식장이 많다.

 

 

 

 

 

 

 

 

전복 양식장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주민들 이야기로는 대규모로 양식장을 운영하는 사업체의 한 해 매출만 수 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
내 생각엔 수 십억 원 이상도 될 것 같다.
전복의 먹이로는 다시마를 사용하는데 다시마도 같이 양식을 한다고 한다.

 

 

 

 

 

 

 

 

산 위에서 본 양식장 옆을 지나는 여객선.
여객선 안에서 보는 풍경과 멀리서 그 여객선을 보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청산도에 있는 유일한 병원으로 읽힌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런 섬에서 병원을 운영하기에 힘드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역시 대단하신 분이다.
이강안 원장(85세/2020년 기준).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전주고를 거쳐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개원해 일하시다 우연히 청산도에 오셔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2020년 10월에는 ‘자랑스러운 전남인상’을 받았고 해마다 보령 의료봉사상을 받았다고 한다.

2020년 초에는 EBS 교육방송이  원장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한 ‘명의’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고 한다.
연세가 지긋한 원장 선생님의 하루 일과가 머리에 그려진다.

 

 

 

 

 

 

재미있는 벽화다.
마을에서 하는 풍어제와 관련된 벽화 같다.
어촌마을의 벽화 중에 풍어제와 관련된 벽화가 많다.
맨 오른쪽 새마을 운동모자를 쓰신 분의 모습으로 시대를 읽을 수 있다.

 

 

 

 

청산도 슬로길 11구간 미로길이다.
여기서부터 청산도항까지 이다.
아기자기한 집들과 돌담, 그리고 좁은 길들이 엉켜 있는 재미있는 구간이다.

 

 

 

 

 

 

보기에는 단순한 어촌 마을 같지만 사이사이 이웃 간에 나 있는 길은 구불구불한 미로길이다.
집마다의 경계를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 궁금했다.
서로서로 이웃끼리 땅도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렇다고 땅 때문에 싸우지도 않고 수 십 년, 수 백 년을 살아온 이웃 간의 정이 두터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미로길의 대부분이 사진과 같다. 돌담의 높이로 봐서는 가정의 사생활 보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정겨운 풍경이다.
지나가면서 담 위로 슬쩍슬쩍 드려다 보니 내가 사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장독대, 작은 마당, 빨랫줄에 걸린 빨래, 집 앞에 가지런히 놓인 가족들의 신발, 작은 화단에 심긴 화초..
이런 것들.

 

 

 

 

한라봉.
어릴 적 제주에서 생산된다는 귤도 참 많이도 먹었는데
왠지 이제는 신 맛이 나는 과일에 손이 가지 않는다.

 

 

 

 

남해안 지역과 제주도 지역에 돌담이 정말 많다.
돌담을 볼 때마다 만들 때 인부들의 노고가 생각난다.
돌 한 개 한 개 쌓아가면서 보낸 많은 시간들과 노고.
특이한 것은 청산도와 제주도에는 정말 돌이 많다.
담을 쌓은 돌 역시 다른 데서 갖고 온 경우도 있었겠지만 집터를 고르면서 집터에서 나오는 돌의 양도
상당히 많아 그 돌로 담을 쌓지 않았나 싶다.

 

 

 

 

 

 

모든 민족들은 그 나름의 특징이 있다.
많은 특징 중에 나도 한국사람이지만 한국사람들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그 반대로 한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이곳은 쓰레기 집합 장소가 아닙니다.'를 반대로 읽는가 보다.

어찌 청산도 뿐이겠는가?
그동안 다녀본 산과 들, 그리고 많은 탐방로 등에는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많다.
일본 규슈 올레길 주변은 그렇지 않다.
길거리의 청결부문 이야기다.

 

 

 

 

 

미로길
왼쪽 위로 물탱크가 보인다.
사진 가운데 저 멀리 지붕 위로도 물탱크가 보인다.
수압이 약해서 일까 아니면 물이 흔할 때 받아두었다 귀할 때 사용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참고로 청산도의 산 아래쪽으로 가보면 그래도 꽤 많은 물이 흐른다.
식수 사정은 좋은 것 같았다.

 

 

 

 

청산항구(도청항) 뒤편에 가면 193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번성한 청산 파시의 옛 생활문화와 그 당시의 역사가 남아 있다. 얼핏 보아 영화 촬영장 같기도 하다.

'파시'라는 말은 성어기 때 어항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을 말하며  넓은 의미로는 해상에서 열리는 어시장(魚市場)을 포함한 말이기도 하다.
그 당시의 가옥구조 및 주민들의 생활의 형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옛 청산면사무소이다.
보전 생태가 좋다. 안타깝게도 실내에는 아무것도 없고 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예전에는 갤러리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공간을 잘 활용하면 유용하게 쓰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바로 옆에 카페도 있다.

 

 

 

 

 

 

 

 

맨 끝에 카페가 있다. 느림 카페.

 

 

 

 

 

 

 

다시 파시 문화거리로 나왔다.
간독 자리이다.
'1920년대부터 일제 해방까지 고등어 파시가 청산 어업의 주가 되었다. 안통길을 따라 고등어가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파시에 고등어 염장을 하는 간구덕(간독)으로 사용하던 장소이다.'

 

 

 

 

 

 

 

 

 

오른쪽 옆 건물이 간독 자리이다.

 

 

 

 

 

 

 

 

간독자리

 

 

 

 

 

 

 

 

옛 동아일보 기사 
위의 출판 날짜는 서기 1949년 5월 31일로 되어 있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한 달 전쯤 신문기사.

 

 

 

 

 

 

 

 

 

 

 

 

 

 

 

 

 

 

 

 

 

 

 

 

 

 

 

 

 

 

 

 

 

 

 

 

 

 

 

 

 

 

 

 

 

 

 

 

 

 

 

 

 

 

 

 

 

 

 

 

 

 

 

 

 

 

 

 

 

 

 

 

 

 

 

 

 

 

 

 

 

 

 

 

 

 

 

 

 

 

 

 

 

 

 

 

 

 

 

 

 

 

 

 

 

 

 

 

 

 

 

 

 

 

 

 

 

 

 

 

 

 

 

 

 

 

 

 

 

 

 

 

 

 

 

 

 

 

 

 

 

 

 

 

 

 

 

 

 

 

 

 

 

 

 

 

 

 

 

 

 

 

 

 

 

 

 

 

 

 

 

 

 

 

 

 

 

 

 

 

 

 

 

 

 

 

 

 

 

 

 

 

 

 

 

 

 

 

 

 

 

 

 

 

 

 

 

 

 

 

 

 

 

 

 

 

 

 

 

 

 

 

 

 

 

 

 

 

 

 

 

 

 

 

 

 

 

 

 

 

 

 

 

 

 

 

 

 

 

 

 

등산이나 트레킹을 떠날 때 늘 나와 함께 하는 배낭은 어쩌면 나의 스승일지도 모르겠다.
걷는데 가장 힘든 일은 배낭의 무게다.
무게가 무거우면 멀리 가려고 해도 갈 수 없고, 갈 수 있다 해도 체력적으로 피곤도가 높아진다.
사실, 등산과 트레킹 때 기분 좋게 다녀오려면 배낭의 무게는 최소화하고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양만큼 챙기면 된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생살이 삶의 무게는 늘 무겁다. 원인이 뭘까? 나의 욕심이다.
훗날 나이가 더 들어서 산과 들로 나설 때 쓸데없는 것들을 배낭 속에 많이도 구겨 넣을 것 같다.